[시가 있는 공간] 나무들은 몸이 아팠다

입력 2017-02-28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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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나무

나무는 몸이 아팠다

눈보라에 상처 입은 곳이나

빗방울들에게 얻어맞았던 곳들이

오래전부터 근지러웠다

땅속 깊은 곳을 오르내리며

몸을 덥히던 물이

이제는 갑갑하다고

한사코 나가고 싶어 하거나

살을 에는 바람과 외로움을 견디며

봄이 오면 정말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스스로에게 했던 말들이

그를 못 견디게 들볶았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의 헌데 자리가 아플 때마다

그는 하나씩 이파리를 피웠다

시집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춥고 불안한 겨울이었다. 어느 겨울치고 춥고 삭막하지 않은 겨울이 있었을까마는 이번 겨울만큼 봄을 기다린 적은 없는 것 같다. 그것은 자연이 가져다주는 눈과 얼음과 싸느란 기온보다는 이 나라 정치현실이 몰고 온 참담함 때문에 더욱 견디기 어려운 겨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안을 떨쳐내기 위하여 추위를 무릅쓰고 광장으로 나갔을 것이다.

촛불과 태극기로 국민을 분열시켜놓은 당사자는 겨우내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모르겠으나 남북과 동서, 거기다가 탄핵과 반탄핵으로 사분오열된 우리들의 겨울은 욕되고 수치스러웠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이 눈을 부릅뜨고 내려다보거나, 세종대왕이 잠을 설치고 앉아 있는 광화문에서 봄을 기다리며 촛불과 함성으로 겨울을 견뎠던 것이다.

춥지 않은 겨울은 없다.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눈 온 다음 날 산에 가면 중동이 부러졌거나 몸을 찢기며 떨어져 나온 생솔가지들로 눈이 아프다. 그러나 아무리 혹독한 추위가 닥쳐도 나무들은 갈 곳이 없다. 저 자신이 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의 무게가 몸을 찢고 얼음이 전신을 뒤덮더라도 나무들은 견딘다. 그리고 쉬임 없이 자신을 위로하며 땅속 깊은 곳에서 물을 끌어올려 몸을 덥히는 것이다.

그래서 겨울 나무들은 성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나무나 사람이나 상처 없는 삶은 없다. 이게 나라냐 하면서도 우리가 반듯하게 고통을 받아내는 것도 저 자신이 모두 나라이기 때문일 것이다.

피하고 싶은 겨울이었다. 신문이나 티브이도 멀리하고 싶은 한 철이었다. 막장 드라마보다도 저급한 현실을 마주하며 돌멩이처럼 부끄러웠다. 그렇지만 한 줌도 안 되는 불의의 세력을 처벌하지 못하거나 뿌리 깊은 어둠의 세력을 꺾어 이 겨울의 분노와 슬픔을 풀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보다 더 모욕적인 겨울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봄은 오고 있다. 이제 날이 풀리고 바람이 순해지면 몸을 덥히던 물들이 갑갑하다고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자리마다 나무들은 새 잎을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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