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이 거세지자 최승희는 남편 안막과 함께 북한으로 건너가게 된다.
1946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무용연구소를 평양에 설립하고 우리나라 전통무용의 체계화와 무용극 창작에 몰두했지만, 1958년 남편 안막이 숙청되면서 그녀 역시 숙청을 당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최승희의 정확한 사망 시기와 이유는 불분명하다. 다만 북한에 있는 그녀의 묘비에는...
광복 후 남편인 안막을 따라 월북해서 최승희무용연구소(평양특별시)를 세워 소장에 취임하고 공훈배우, 인민배우 칭호를 받은 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기도 했다.
1958년 안막이 숙청되면서 연금 당했다는 설이 나돈 이래, 행적이 거의 알려지지 않아 숙청되었다는 소문이 오랫동안 나돌았다. 그러나 한설야와 함께 사후 복권된 상태라는 것이 2003년에...
5일 오전 8시께 경북 A의료원에서 발인제를 마치고 안막동 화장터로 향하던 이모(75)씨의 운구 행렬이 40여분만에 의료원으로 되돌아갔다.
오전 8시30분 발인 예정이던 권모(78)씨의 시신과 뒤바뀐 사실을 의료원측이 뒤늦게 확인한 것.
사고 당시 의료원 내 시신 안치실에는 이씨와 권씨를 포함해 모두 8구의 시신이있었지만 이를 감독해야할 관리인은 자리를 비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