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나부터

입력 2014-07-10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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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ㆍ프리덤팩토리 대표

한국은 사회갈등 수준이 높다. 박준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이 OECD 국가를 대상으로 작성한 2010년 기준 사회갈등 지수에서 한국은 2위였다. 한국보다 갈등지수가 높은 나라는 터키뿐이었다. 청계천 광장과 국회 앞은 시위대와 고성과 경찰들로 조용할 날이 없다.

갈등에 대해서 말하다 보면 결론은 대부분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로 향한다. 가진 자들이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나머지 사람들의 분노가 가라앉을 거라는 주장들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자기를 그 범주에 넣은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다들 자기보다 더 돈 많은 사람들이 베풀어야 한다는 말뿐이다. 대기업 부장, 대학교수, 박사들… 이 정도면 대한민국 상위 20%에는 속할 텐데 그 사람들조차도 자기가 기부를 실천하겠다는 다짐보다는 다른 누군가에게 노블리즈 오블리주를 요구하곤 한다. 그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부자들도, 정작 당사자들은 자기보다 더 돈 많은 사람을 향해 기부를 하라고 요구하고 있을 것 같다. 여기서도 서로 남 탓만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 갈등의 원인은 마음속의 분노라고 생각한다. 가진 자들이 더 많이 기부한다고 해서 그 분노가 사라질까. 사실 지금도 부자들은 많은 돈을 낸다. 근로소득세의 경우 상위 10%가 전체 세수의 68.1%를 낸다. 하위 40%는 근로소득세를 아예 한 푼도 안낸다. 법인세는 상위 1%가 86%를 납부한다. 그 정도면 가진 자들이 제 몫을 안 한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소위 부자증세라는 것을 해서 상위 1%가 세금의 99%를 내는 상황이 온다고 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분노할 것이다. 여전히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요구할 것이다.

나는 분노의 상당 부분이 분노하는 사람들의 문제이지 분노의 대상이 되는 그 상대방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분노하는 상위 1%가 나머지 사람들에게 무슨 해코지를 했는가. 해코지를 당한 적이 없는데도 사람들은 분노한다. 그 분노는 그들의 대립적 세계관, 계급주의적 세계관이 만들어낸 결과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강제로 똑같이 만들지 않는 한 그 분노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쉽게 말해서 분노도 대부분 자기 탓이지 남 탓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처럼 서로가 남 탓만 하고 있는 한 갈등은 사라지지 않는다.

당신부터 기부를 시작하라. 그것이 바로 세계에서 가장 기부를 많이 하는 유태인들의 태도다. 미국에서 가장 기부를 많이 한 사람 6명 가운데 5명이 유태인이다(2010년 기준). 1위인 조지 소로스는 3억3000만 달러를 기부했고 2위인 마이클 블룸버그는 2억8000만 달러를 기부했다. 우리 돈으로 3000억원이 넘는 돈들이다. 모두 유태인 부자들이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유태인들은 부자만 기부하지 않는다. 부자든 가난하든, 어른이든 아이든 가리지 않고 모두가 하는 일이 기부다. 어릴 적부터 모든 집에서 체다카(Tzedakah)라 불리는 저금통을 마련해 놓고 수시로 기부할 돈을 모은다고 한다. 기부는 그들에게 생활의 일부인 셈이다. 유태인 부자들은 부자가 되었기 때문에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부자이기 이전부터 늘 해오던 대로 하는 것일 뿐이다. 단지 그 금액이 커졌을 뿐. 평생을 기부 같은 것 안하고 살던 사람이 돈 좀 벌었다고 갑자기 기부할 마음이 생길 리 없다.

다행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월드비전이나 컴패션 같은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나의 돈과 나의 시간을 투자하기 시작한 것이다. 부자 탓, 사회 탓만 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들이다. 그처럼 작은 기부를 실천하다 보면 언젠가는 큰 기부도 가능해질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의 갈등도 줄어들고, 품격도 높아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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