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속 스포츠는 참혹한 전쟁터 [오상민의 현장]

입력 2014-03-16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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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속에 비친 스포츠는 전쟁터를 방불케 할 만큼 전쟁용어가 남용되고 있다.

“○○○ 일본열도 정복”, “열도 정복 앞둔 ○○○…”, “○○○호 승선 ○○○, 부활포 쏠까” “○○ 용병…○○전 첫 출격”….

최근 3개월 사이 국내 미디에서 쏟아낸 스포츠 기사의 제목이다. 원제목은 “김연아 일본열도 정복”, “열도 정복 앞둔 오승환…”, “홍명보호 승선 박주영, 부활포 쏠까” “한화 용병…SK전 첫 출격”이다.

제목 일부를 ‘○’로 처리했을 뿐인데 전혀 다른 느낌이다. 전자는 군사적이고 과격한 느낌만이 강조된 반면 후자는 선수와 팀 이름으로 인해 과격한 느낌이 조금이나마 희석됐다.

그래서인지 요즘 섬뜩한 전쟁 용어를 아무렇지 않게 남용하는 미디어가 많다. 오죽하면 ‘스포츠 현장은 전쟁터’라는 말이 나올까. 적당한 흥분과 긴장감, 그리고 대중의 관심 유도가 목적이라지만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선지 오래다.

경기장은 전장ㆍ전쟁터, 선수는 전사(여전사), 외국인 선수는 용병, 나이 든 선수는 노장ㆍ노병, 공격적인 선수는 돌격대ㆍ특공대, 뒷심이 좋은 선수는 역전의 용사, 출장은 출격, 공격은 습격ㆍ폭격, 일방적인 경기는 맹폭, (신)기술은 (신)무기ㆍ(신)병기ㆍ비밀병기, 원정경기는 침공ㆍ상륙작전 등으로 표현된다.

팀이나 구단은 군단ㆍ사단ㆍ부대 등으로 쓰인다. 야구에서 교타자(스몰볼)가 많은 팀은 소총부대, 강한 팀은 무적함대, ‘여자팀=낭자군’, ‘한국 팀=코리아 군단’ 등이 대표적이다.

경기 용어는 이미 오래전부터 전쟁용어로 사용됐다. ‘홈런=대포’, ‘빠른 슈팅=대포알’ 등이다.

관심이 쏠리는 빅 이벤트는 ‘총성 없는 전쟁’, 대규모 상금 대회는 ‘쩐의 전쟁’으로 표현되며, 라이벌전은 ‘도쿄대첩’, ‘서울대첩’ 등으로 보도됐다. 경기에서 승리하거나 우승하면 격침, 침몰, 정복, 정벌 등 섬뜩한 단어들이 쏟아진다.

종목별 포지션을 일컫는 말에도 전쟁 용어가 빠지지 않는다. 농구 포인트가드는 야전사령관, 언더핸드 투수는 핵잠수함, 축구 골키퍼는 수문장 등이다. 선수들의 별명도 전쟁 용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 ‘갈색 폭격기’ 신진식, ‘탱크’ 최경주 등이다.

그밖에도 스포츠 전쟁용어는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문제는 국민정서의 파괴다. 과격하고 섬뜩한 전쟁용어를 스포츠에 그대로 도입, 승리지상주의와 ‘과격한 스포츠’라는 편견을 갖게 하고 있다. “일본 심장에 태극기를 꽂아라”, “미국대륙 정벌” “○○군단 침몰” 등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서포터스의 폭력ㆍ폭행, 관중 난동, 스포츠의 정치 개입, ‘묻지마’ 애국주의(민족주의) 강요, 인종차별ㆍ인격모독 응원 문구, 흥분만 있고 해설은 없는 스포츠 중계 등이 스포츠 전쟁용어 난발의 폐해다. 말을 바꿔 설명하면 스포츠 현장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가 미디어의 스포츠 전쟁용어 남용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뜻이다.

요즘 스포츠 현장은 미디어에 의해 전장에 내몰린 선수들과 지원군을 자청한 양팀 관중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모습이다. 마치 미디어의 덫에 걸려 신음하는 환자들 같다. 어쩌면 진정한 페어플레이가 필요한 건 선수보다 어휘력 부재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미디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깊이 반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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