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정말 KBS 주말드라마 ‘왕가네 식구들’ 광박이를 보내 줘야겠다는 마음이 드네요. 시원하기도 한데 아쉬움이 더 크죠. 시청률 50%를 넘지 못했지만 ‘왕가네 식구들’ 일원으로 마음속에서는 5자를 본 것 같아요. 더 이상 수치를 가늠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을 만큼 저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준 작품이에요. 국민드라마의 힘을 느끼겠더라고요. 저의 필모그래피에 가장 큰 이름이 쓰였어요. “저는 ‘왕가네 식구들’에서 광박이를 했던 이윤지입니다”라고 내 이름 앞에 두고 싶은 작품이에요. 문영남 작가님과 진형욱 감독님을 비롯해 국민배우라 할 만한 선생님들과 함께하면서 ‘나도 국민이라는 말을 이름 앞에 붙일 수 있는 배우가 될 수 있을까’라는 꿈도 꿔 봤어요. 자신감도 생겼죠.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이제야 올라가는 것 같아요. 이제껏 잘하고 싶어하는 모습만 봤지, ‘이윤지 너는 괜찮은 사람이야. 너는 다음이 기대돼’라는 말을 못했어요. 나이를 핑계 삼아 뒤를 돌아보고 앞을 보면 30세에 ‘왕가네’가 준 것은 스스로 기대할 수 있는 힘을 준 작품이네요.
극중 남편인 한주완씨와 호흡 만족도는 100%예요. 커플 연기를 하는데 ‘잘 어울린다’는 말을 못 들으면 서운하거든요. 제 이상형은 목소리가 좋은 남자예요. 배우자를 생각할 때도 상대의 음성이 나의 목소리와 어울리느냐를 따졌죠. 한주완씨 목소리가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이 사람이랑 연기할 때 정말 편하겠구나 했는데 시청자분들께도 좋게 봐 주시고 예뻐해 주셔서 감사해요. 반면 혹독한 시집살이를 하면서 결혼관도 조금 바뀌었어요. 친정이 마음의 터전임을 알았고, 시아버지가 나를 흡족해하지 않았을 때 노력하는 방법, 남편과의 관계 등을 깨닫게 됐죠. 35세라고 막연히 정해 뒀던 결혼시기도 달라졌죠. 결혼도 타이밍이더라고요. 좋은 연인이 있다면 시기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어느덧 데뷔 10년차가 됐어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 ‘나문희·김해숙 선생님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죠. 사실 선생님들의 경우 경력도 대단하고 연기 내공도 탄탄하기 때문에 대본만 외울 수 있다면 그들의 노하우로 연기하리라 생각했어요. 엄청난 착각이었죠. 기억력이 안 좋아질수록 더 철저하게 연습하고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세요. 왜 그 자리에 있는지, 후배들이 왜 닮고 싶어하는지 알겠더군요. 더 열심히 할 거예요. 관객에게는 다음이 기대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좋은 여자로 사는 삶도 꿈꾸죠. 좋은 여자, 멋진 배우가 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