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현장 체험기]현대重 울산공장… 땀으로 일군 ‘조선업 세계1위’ 위용 엿봤다

입력 2013-10-0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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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장 3개 크기 컨선 갑판 오르자 정신이 아찔

▲지난달 26일 현대중공업 울산 본사를 찾은 이투데이 산업부 최재혁 기자(오른쪽)가 3번 도크에 있는 초대형 컨테이너선 갑판위에서 비파괴검사를 하고 있다. 비파괴검사는 초음파·X선·방사선투과검사 등으로 용접의 결함 유무를 파악하는 작업이다. 노진환 기자 myfixer@
어느 날 임금은 맹인들에게 코끼리를 만지게 했다. 상아를 만진 맹인은 코끼리를 큰 무에 비유했고 귀를 만진 맹인은 코끼리를 곡식을 까부르는 키에 빗댔다. 코끼리 다리를 만진 맹인은 절구통, 머리는 돌, 등은 평상, 배는 밧줄 등 서로 달랐다. 불경(佛經)에 나오는 얘기로 코끼리는 불성(佛性)을, 맹인은 경험이 일천한 어리석은 중생(衆生)을 뜻한다.

지난달 26일 찾은 현대중공업 울산 본사 3번 도크에 있는 초대형 컨테이너선. 갑판이 축구장 3~4배 크기인 이 배에 올라서자 물론 코끼리는 배였고 중생 노릇은 기자였다.

1만500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대분)급 컨테이너선의 높이는 27m로 아파트 10층 높이다. 걸어 올라 갑판에 도착하자 숨이 찼다. 추분(秋分)이 지나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씨였지만 땀은 이마를 타고 눈썹에 머물렀고 등은 금세 축축해졌다. 사실 갑판에 올라선 뒤에도 너무 넓어 배 위에 있는지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다 갑판에 서서 땅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 높이로 인해 오금에 전해진 찌릿함, 선두·선미 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끝까지 보이지 않는 웅장함에 마치 내가 코끼리 등에 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귓가를 울리는 용접소리와 콧등을 때리는 용접 불꽃내도 작업 현장이란 것을 일깨워줬다.

◇아찔한 높이의 배 위로 올라가자… 다리가 후들= 기자가 체험한 작업은 용접 뒤 하는 비파괴검사였다. 비파괴검사는 초음파·X선·방사선 투과 검사 등으로 용접의 결함 유무를 파악하는 작업이다. 선체의 강도와 품질을 책임지는 중요한 과정이다.

이상복(55) 현대중공업 조선품질경영부 기감은 먼저 위상배열초음파탐상검사(PAUT)를 실시했다. 용접 부분에 초음파가 들어갈 수 있는 매질인 물을 뿌리고 탐촉기를 갖다 대면 검사기 화면에 초음파의 위상과 신호, 색깔 등이 표시된다. 작업자는 이를 해석해 결함 유무를 판단한다.

검사 작업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검사할 곳이 무수히 많다는 것이 시작부터 숨 가쁘게 했다. 선박 도면을 펼치니 검사해야 할 곳이 1600여곳에 달했다.

물론 한 명의 작업자가 모두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술 발달로 선박의 건조 속도가 빨라져 품질 검사 작업도 잰걸음을 내야 했다. 한 곳의 검사를 마쳤다고 해서 게으름을 피울 수 없었다. X선 검사는 결과가 나오려면 하루가 걸리지만 초음파 검사는 그 자리에서 바로 결함 유무를 확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부지런할수록 작업 속도는 더 빨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검사기에 나온 결과를 해석하는 것은 초보자로서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품질 검사의 달인인 이 기감의 설명을 들으며 한 마디라도 더 이해하려 했다. 이 기감은 1977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평생을 조선업에 헌신한 전문가다.

그는 “PAUT 검사는 일반 초음파 검사와 달리 초음파를 여러 각도로 보내 검사 범위를 넓히고 정확성을 높여주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검사를 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유럽 등에서 인정하는 국제자격증을 따야 한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체험하진 못했지만 비파괴검사는 야간에도 이뤄진다. 방사선 검사는 만일에 발생할 피폭 우려를 대비해 다른 작업자들이 없는 밤에 안전복을 갖춰 입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 조선품질경영부 직원은 모두 530여명이다. 이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선체의 품질을 챙기기 위해 땀을 흘렸다.

▲이상복 현대중공업 조선품질경영부 비파괴검사과 기감과 이승연 기사가 지난달 26일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초대형 컨테이너선에 올라 위상배열초음파 탐상작업을 위해 도면을 점검하고 있다. 노진환 기자 myfixer@
◇조선 한국의 맥, 젊은 기술자들 이어줘야= 오후 검사작업을 마친 오후 5시께 배에서 내려오자 안도의 한숨부터 나왔다. 안전장비를 갖추고 올라간 배였지만 아찔한 높이와, 작업이 진행 중인 현장들로 인해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탓이다.

동행한 현대중공업 문화홍보부 관계자는 “처음 배에 올라가면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작업해도 엄청 피곤하다. 집에 가면 잠은 푹 잘 수 있을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고작 하루 동안의 선박 건조 체험으로 세계 1위 한국 조산산업의 숨결과, 현장 노동자들의 노력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부족했다. 그러나 동행한 이 기감은 조금이나마 이를 채워줬다. 그는 국내 중공업 역사의 산증인답게 많은 얘기를 들려줬다.

그는 “입사 초기에는 일본 중공업이 우리보다 훨씬 앞섰지만 지금은 일본과의 격차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인의 근면성실함, 젊은이들이 끊임없이 지원하며 기술자의 대가 끊기지 않는 장점 등이 일본보다 앞서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 기감은 이어 “나야 이제는 조만간 정년을 맞겠지만 젊은이들이 우리나라 중공업을 세계 선두로 이끌어주는 것이 현장을 떠난 뒤에도 갖는 소망”이라고 말했다. 이 기감과 함께 비파괴검사에 동행한 이승연(32) 기사는 2005년 입사해 올해로 입사 9년차를 맞았다.

서두에서 언급한 불경 얘기는 최근 언론이 ‘전체를 보지 못한다’는 부정적 뜻으로 많이 쓰는 것과 달리 긍정적 뜻도 갖고 있다. 맹인이 만진 코끼리 신체의 한 부위는 그 자체로는 거짓이 아니다. 이처럼 모든 중생은 불성의 일부분을 이해하고 있고 이를 깨칠 수 있는 잠재 능력을 갖췄다는 것 역시 이 얘기의 속뜻이다.

현대중공업 울산 본사에 있는 2만6000여명의 직원이 코끼리의 한 부분씩 만져 이를 합치면 세계 1위 경쟁력을 갖춘 선박이 만들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산업이, 경제가, 나아가 복지가 하루아침에 만족할 성과를 내지 못할지언정 창업자의 땀, 현장 노동자들의 땀이 모여 세계 1위를 이룬 것만은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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