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그림이 있는 골프]시공 다스리는 들판의 유랑자

입력 2013-05-24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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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삽화 방민준 (골프 칼럼니스트)

많은 저명인사나 유명 골퍼가 12세기경부터 골프와 얽힌 수많은 어록을 남겼다. 구력이 길건 짧건 골프 애호가들끼리 만나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골프 얘기를 한다. 아무리 골프 서적을 많이 읽었다 해도 골프 구력이 늘어가면서 골프에 대해 새로이 하고 싶은 말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이미 알려진 골프의 정의들만 모아도 몇 권의 책을 만들고도 남을 터이지만, 앞으로 새로이 골프를 배우는 사람들 역시 나름대로 골프를 정의하려 들 것이 틀림없다.

골프가 보통 스포츠와는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간파할 수 있는 부분들이다. 또한 골프의 세계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그 깊이와 넓이가 무한하다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된다.

골프의 불가사의성을 이해하기 위해선 골프가 왜 다른 스포츠와 다른가를 먼저 알 필요가 있다. 골프를 에워싸고 있는 두꺼운 껍질을 한꺼번에 깨고 핵심에 접근하는 지름길이다.

골프가 다른 스포츠와 다른 핵심은 골프에 소요되는 시간과 공간에 여백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이다. 골프는 그림에 비유하면 동양화다. 서양화는 여백이 없이 색으로 채워지지만 동양화는 여백이 많다. 동양화의 묘미와 깊이는 바로 이 여백에 있다.

골프 역시 틈이 너무 많다. 한번 라운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대략 4시간으로 잡을 때 실제로 샷을 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개인의 스윙습관에 따라 차이나겠지만 길어야 3초 정도다. 80타를 치는 골퍼라면 240초, 즉 4시간 걸리는 라운드에서 스윙하는 시간은 기껏 4분에 불과한 셈이다. 나머지 3시간56분이 틈이다. 샷을 한 뒤 담소하며 이동하고 다음 샷을 준비하는 데 걸리는 이 시간이 바로 골프의 틈이다.

골퍼가 직면하는 공간 역시 여백투성이다. 골퍼가 한 라운드를 도는 공간은 다른 스포츠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그리고 모두에게 펼쳐진 광대한 공간이지만 실제 이용하는 공간은 개인마다 천차만별이다. 여기에 골프의 불가해성이 있다. 골프는 바로 이 공간적 틈과의 싸움이다. 함께 플레이하는 동반자와의 거리도 길어졌다 짧아졌다 하며 수많은 공간을 만든다. 플레이를 펼쳐야 할 공간 역시 길고도 넓다. 샷과 샷 사이에도 틈이 너무 많다.

이런 시간적, 공간적 틈에 온갖 상념이 피어오른다. 아쉬움과 실망감, 멋진 샷을 재현하고 싶은 욕심, 동반자 개개인에 대한 호불호의 감정, 경쟁자의 플레이에 따른 마음의 흔들림, 언제 튀어나올지 모를 징크스 등 여름 하늘에 뭉게구름 피어오르듯 온갖 상념이 이 틈에서 피어난다. 아무리 골프기술이 뛰어나도 이 틈을 다스릴 줄 모르면 골프를 즐길 수 없다. 골퍼란 이런 광활한 시간과 공간의 틈을 노니는 유랑자다. 동반자 중에는 선의의 동반자도 있고 적대적 동반자도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모든 결정은 스스로 내려야 하고 그 결과는 자신의 몫이다.

골프의 시간적, 공간적 틈을 이해하고 다스릴 줄 모른다면 진정한 골퍼라 할 수 없다. 거의 무한정으로 널린 시간과 공간 속을 유유자적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바로 골퍼가 갖추어야 할 최상의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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