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오후 6시 서울 남대문 시장 골목안. 김을 파는 한 상점에서 주인과 일본인 관광객 사이에 실랑이가 오갔다. 도시락 김 1봉(12개입)을 사는데 덤을 과도하게 요구한 탓 이다. 결국 이 상인은 김 1봉을 팔면서 덤을 5개 줬다. 엔저 여파로 와타나베 부인들이 중국인을 능가하는 짠돌이 쇼핑객으로 변한 것이다.
같은 시각 부근에 있는 한국공예상품점에서 여성 일본인 4명이 물건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 가게 주인 최 모(35·남)씨는 2~3시간에 처음 맞는 손님이 오자 공예품 2개를 들고“1만원”을 외쳤지만 돌아오는 것은 “이야다(싫다)”라는 말 뿐이었다.
엔저의 높은 파고가 서울 남대문과 명동 일대를 덮쳤다. 엔화의 가치가 급격하게 하락하면서 일본인 관광객으로 북적되던 남대문 시장과 상가는 썰렁하기 그지 없다.
회현역 부근 메사 건물 앞 일본인 관광객으로 평소 재미를 보던 미샤 매장에는 호객소리가 끊겼다. 문을 조금 열어둔 채 여직원은 멍하니 밖만 바라보고 있고 가게주인은 난로만 쬐고 있었다.
바로 옆 건강식품 매장 관계자는 “(남대문 일대가 일본인 관광객이 끊겨)직원을 다 자르는 판 이다. 옆에 큰 가게들도 다 직원들을 정리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환전상들도 개점휴업 상태였다. 남대문 환전소 상인들은 “하루 종일 앉아 있기만 했을 뿐 돈을 못 벌었다”고 입을 모은다. 일본인 관광객의 씨가 마른 탓에 문을 열고 나와있지만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회현역 앞 한 아주머니 환전상에게 기자가 “1000엔도 환전되나요?”라고 묻자 상인은 “당연히 된다”며 반색했다. 수 시간동안 길거리에서 추위와 싸웠지만 손님이 하나 없어 적은 돈도 아쉽기 때문이다.
1000엔을 1만1900원으로 바꿔 주면서 이 상인은 “여기 길거리를 보세요. 어디 일본 사람이 다니냐”며 목소리를 높혔다.
롯데마트 서울역점에는 일본인들의 카드 쇼핑이 사라졌다. ‘마켓오 브라우니’를 비롯해 다양한 초콜릿, 과자, 김 등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은 상품이 계산대 앞에 진열돼 있지만 관광객 대부분이 조그만 바구니에 하나둘씩 담았다.
실제로 지난 1일부터 23일까지 롯데마트 서울역점의 오리온 마켓오 브라우니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0.4%나 줄었다. 조미김은 10.5%나 떨어졌다.
롯데마트 서울역점의 한 직원은 “지난해 겨울부터 매출이 많이 줄어들었다”며 “체감 상으로도 외국인 관광객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말했다.
명동 분위기는 흉흉할 정도다. 쇼핑인파로 북적이던 이곳에서 떼를 지어다니는 일본인 관광객은 찾아볼 수 없다.
명동 일대 화장품 브랜드들은 매출이 급격히 줄었지만 임대료는 폭등해 문을 닫는 곳이 나오고 있다. 명동의 M 환전소 직원은 2007~2008년 엔저 때보다 환전 규모가 70%나 줄었다고 말했다. “엔화를 원화로 바꿀려는 일본인 관광객이 하나도 없습니다. 현재 명동은 쑥대밭입니다”
화장품 매장은 처참할 정도다. 한 매장 관계자에 따르면 토니모리 명동 중앙대로점의 경우 하루 방문 고객수가 70%나 줄었고 매출은 75%나 급감했다. 에뛰드하우스 명동 중앙대로점은 예년 대비 하루 매출 300만~500만원 가량 떨어졌다.
땅 값이 전국에서 가장 비싼 네이처 리퍼블릭 명동월드점도 ‘엔저’직격탄을 맞았다. 이 매장은 지난해 상반기 대비 지난해 하반기 매출이 약 4~5% 감소했다. 이 매장의 지난해 상반기 매출은 일본인이 60%를 차지했지만 현재 35%선으로 급격하게 떨어진 상태다.
한편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일본인 관광객수가 22만7227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 보다 7만1842명이나 준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