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cine 해부학] 영화 '공모자들'의 이상한 현실 해석법

입력 2012-09-03 11:00 수정 2012-09-03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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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밀매를 다룬 영화 ‘공모자들’. 소재 자체에서 오는 자극은 올해 최고로 꼽아도 손색이 없다. 특히 몇 년 전 한 신혼부부가 중국 여행 도중 장기를 적출 당해 살해된 실화를 모티브로 했단 점만 봐도 스토리의 충격파는 상상 이상이다. 이제 영화는 피와 살이 난무하는 ‘고어 파티’로 방향타를 잡으면 만사 오케이다. 그런데 문제가 그렇게 간단치 않다. 배가 산으로 가버렸다. 좋은 점을 들출 수도 있지만 그보다 나쁜 점이 더 눈에 띈다. 영화팬들의 보장된 관람 선택권을 존중하기 위해서라도 한 손으로 꼽기 힘든 좋은 쪽보단 양손으로 꼽기에도 부족한 나쁜 점이 너무 두드러진다.

영화 전반에 걸친 스토리는 여러 포털사이트에 공개된 소개 글을 통해 접하길 바란다. 간단한 클릭 몇 번이면 ‘공모자들’에 대한 사전 지식은 충분히 습득 가능하다.

‘공모자들’의 당초 ‘셀링 포인트’는 임창정의 연기 변신이었다. 임창정이 누군가. 대한민국 대표 코미디 배우다. 카메라 앞에서의 그는 변화무쌍하다. 어디로 튈지 모를 그의 연기에 웬만한 베테랑 감독과 상대 여배우가 아니면 호흡조차 불가능 할 정도로 애드리브의 스펙트럼이 넓다. 반면 연기 폭은 상대적으로 좁다. 전매특허인 코미디와 코미디 기반의 드라마적 요소가 강한 ‘연기 잘하는 배우’ 정도다.

다시 ‘공모자들’을 보자. 임창정이 맡은 극중 인물 영규는 불법 장기밀매업자다. 단순한 밀매업자가 아니다. 생면부지의 사람을 납치해 산채로 배를 갈라 장기를 꺼내 파는 인간이다. 이건 말종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말종이다. 쉽게 말해 유영철에 버금가는 인간 이하의 그 무엇이다. 이런 무엇에게 영화는 감정을 선물했다. 사랑에 대한 감정과 인간성에 대한 감정이다. 영화에서 말하는 캐릭터 개연성의 억지 논리다. 결국 감정의 흐름 자체가 중구난방이다.

영화 시작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여행객들이 빼곡한 공해상 여객선. 피 칠갑을 한 한 남자가 숨을 헐떡인다. 미로 같은 객실을 돌아 나온 그의 눈과 그를 쫓는 영규 일당의 신경전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공모자들’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보여 준다. 이 과정에서 보여 준 영규의 악랄함과 비열함의 중간점은 감정의 일반적 범주 안에서 설명 불가능한 추상적 관점이다.

문제는 초반의 강렬함이 덮어지면서 그 느낌이 곧바로 산산조각 나는데 있다. 난데없는 유리(조윤희)와의 러브라인은 앞뒤 설명 없이 격한 태클로 스토리에 끼어든다. 그 러브라인에 대한 정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영규는 불의의 사고로 손을 땐 장기 밀매에 다시 손을 댄다. 그것도 유리에 대한 연정 때문이다. 한 발 더 나아가 보자. 장기밀매를 위해 점찍은 적출 대상자 채희(정지윤)의 정체를 알게 된 뒤 영규는 인간적인 갈등의 면모도 보인다. 산 사람의 몸을 가르고 장기를 꺼내 판매를 하는 인간 백정에게 감정의 진폭을 느껴야 하는 관객들로선 당황을 넘어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 한때 동업자였던 동배(신승환)에겐 ‘양아치’라며 주먹을 날리는 성인군자의 모습도 보인다. 이건 배우의 연기나 캐릭터의 해석, 연출의 문제가 아니다. 기본적인 시작점 자체가 틀렸다.

‘공모자들’은 죽은 사람의 장기를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이식하는 인간애의 극치를 보여주는 내용이 아니다. 최근 안방극장을 장식한 인기 의학 드라마의 한 에피소드는 더욱 아니다. 이건 산 사람의 몸을 가르고 펄떡이는 장기를 꺼내 돈을 받고 파는 이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되는 얘기를 그린 영화다.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 누구인가. 그들이 대체 어떤 목적과 생각을 갖고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인가. 화두는 이쪽에 맞춰져야 한다. 사전적 의미의 악이 아닌 상상 속의 악이 현실로 튀어 나올 경우 벌어질 수 있는 실존의 악을 그리고 그것을 통해 인간의 '악성'을 건드려야 하는 주제가 ‘공모자들’의 내용이다.

'공모자들'의 패착은 여기에 있다. 주인공 영규에게 뜬금없는 선의 본성을 요구한다. 주인공 임창정은 “악과 그보다 더 한 악의 얘기”라고 영화를 설명했다. 그런데 영화는 그렇지가 않다. 단순한 선악구도다. 극단적 클리셰를 요구함에도 이 정도의 성질은 수준 이하다. 그냥 “죄가 밉지 사람이 미운 게 아니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는 삼척동자도 아는 줄거리다. 새로울 게 없다. 다시 말하면 이렇다. 영규란 악인이 있다. 그런데 그가 알고 보면 악인이 아니다. 그렇다면 악인이 아닌 이유를 말해줘야 한다. 그래야 악과 그보다 더한 악의 얘기가 성립한다. 그럼에도 영화는 영규의 행동에만 집중한다. 장기 밀매에 대한 행동만 처음부터 끝까지 풀어간다. 그렇다면 피해자의 감정에라도 시선을 돌려야 했다. 그것도 외면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풀어가는 방식도 문제다. 자극적 소재를 이용한 단순한 자극의 연속일 뿐이다. 장기 밀매란 확고한 스펙트럼의 아이템을 갖고 이 정도의 한정된 얘기를 만들어 낸 것은 화자의 능력 부족이다. 현실을 사실적으로 가장 적나라한 방식으로 담고 싶었단 감독의 의도는 잘 알겠다. 하지만 적나라함이란 단어의 뜻을 조금 오역한 듯 싶다. 그 안에는 리얼리티가 담겨 있어야 한다. 불특정 다수를 타깃으로 한 장기 밀매라고 하면 그 대상자 선택에 대한 치밀한 준비부터 장기 적출을 위한 영규 일당의 전략까지 일련의 과정이 빠른 속도로 그려지면서 관객들에게 사실감을 주입시켜야 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면 “당신이 보는 영화가 실제 존재하는 얘기”란 설득력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공모자들’은 그 설득력을 시각적 자극으로 대신한다. 자극의 강도를 높이며 리얼리티라고 말한다.

물론 그것도 괜찮다. 뜬금없는 반전을 택하며 ‘공모자들’은 소재와 스토리가 갖는 변주의 무한성을 스스로 저버린다.

반전의 포인트는 의외성이다. ‘공모자들’의 반전에는 아쉽게도 그것이 없다. 누구나 예측 가능한 반전은 분명 아니다. 그 반전이 반전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 데코레이션 수준에 그치기 때문이다. ‘공모자들’은 한국영화 사상 가장 자극적인 소재 중 하나인 장기 밀매를 그린다. 그 자체로 반전의 충격파를 주기에 충분하다. ‘공모자들’의 반전은 한때 강박증처럼 영화계에 불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영화 전체의 진중함이 유지되는 것은 배우 캐스팅의 의외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국가대표 코미디 배우 임창정은 러닝타임 내내 카메라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풀어 보자면 임창정은 카메라 앞에선 힘이 넘치는 활어 같은 배우다. 그런 배우가 자신을 죽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몇몇 장면에선 꿈틀거리는 감정을 스스로 제어하는 고통의 눈빛마저 그려낸다. ‘공모자들’은 배우 임창정의 또 다른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분명하다.

또한 최다니엘 역시 순간적 폭발력으로 스토리의 키포인트를 쥔 인물을 무리 없이 소화해 낸다. 오달수의 서슬퍼런 웃음과 조달환이 선보인 존재감은 영화 전체의 미흡한 완성도를 어느 정도 상쇄시킨다.

사실 '공모자들'은 앤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에도 한 동안은 관객들의 뇌리를 마비시키는 이상한 힘을 발휘한다. 감독이 영화 전체의 문제점을 인식한 것일까. 관객들이 그 문제점을 느낄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 빠른 편집이 언급된 문제점을 덮어 버리는 효과를 준다. 그럼에도 문제는 문제다. 소재와 주제 그리고 그 두 가지를 포함한 화두를 담기에 지금의 ‘공모자들’은 분명 너무 작은 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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