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민태성 국제경제부 부장 "런던의 ‘굴욕’…다시 무너진 선진 패러다임"

입력 2012-08-30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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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대도시들은 로마제국과 관련된 곳이 많다.

고대 로마가 차지했던 영토를 감안하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런던 역시 서양사에 존재를 알린 것은 로마제국 시대였다.

옛 프랑스인 갈리아를 점령한 로마의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북쪽의 섬나라이자 옛 영국인 브리타니아를 차지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다.

브리타니아에 대한 별다른 정보가 없어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마침내 기원전 55년 브리타니아의 한 부족이 갈리아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로마 군대가 템즈강 어귀의 켄트에 상륙했다.

이후 서기 43년 클라우디우스 1세가 브리타니아를 점령했다.

로마인들은 템즈강 유역에 요새를 건설했다.

그 요새의 이름이 론디니움이었고 이곳이 영국의 수도인 런던으로 발전했다.

로마인들은 템즈강에 다리를 놓아 런던을 남북으로 이었으며 런던은 이를 통해 유럽 교역의 중심지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때 특히 번성했던 지역이 지금 런던의 금융특구인 시티(the city)로 성장했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런던시티의 역사는 2000년이 넘는 셈이다.

시티는 1189년부터 자체 시장을 선출할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다.

런던시 행정은 런던 시장이 총괄하지만 런던 뱅크역 사방 1평방 마일에 걸친 시티는 ‘로드 메이어(lord mayor)’가 관할한다.

런던시티 시장이 별도로 있는 것은 금융 및 상업중심지로서 시티지역의 독자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로드 메이어는 금융과 관련 영국을 대표하는 대사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임기 1년의 명예직이지만 그만큼 시티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시티의 위상은 규모로도 확인할 수 있다.

2010년 기준 런던을 중심으로 영국은 글로벌 국가간 은행대출시장의 20%를 차지했다.

외환거래 비중은 35%에 달했고 장외 파생상품 거래는 40% 이상이 런던에서 이뤄졌다.

규모가 줄기는 했지만 주식거래 비중도 여전히 30%대를 넘나들고 있으며 헤지펀드 자산의 20%는 런던에서 운용되고 있다.

시티로 상징되는 글로벌 금융중심지로서 런던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리보(LIBOR·런던은행 간 금리) 조작 사태는 시발점인 바클레이스는 물론 로열뱅크오브스코클랜드와 HSBC 등 영국 금융권 대표주자들을 휘청이게 하고 있다.

이들은 천문학적인 벌금에다 형사처벌까지 받을 위기에 처했다.

세계 금융시장을 좌우하던 런던이 초토화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런던의 위기에 웃는 곳이 있다. 바로 뉴욕이다.

미국 법무부는 지난 7월 영국 주요 은행에 대해 리보 사건과 관련해 4억5000만달러 규모의 벌금을 부과한 것을 시작으로 포문을 열었다.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이 이란 정부와 비밀 금융거래를 했다는 조사 결과는 미국의 ‘런던 때리기’를 가속화하는 계기가 됐다.

벤저민 로스키 뉴욕금융감독청장은 SC를 ‘깡패집단’이라고 지칭할 정도다.

영국에서 금융산업은 국내총생산(GDP)의 14%에 달할 정도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대로 금융산업의 패권이 미국에 넘어간다면 영국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당하고만 있을 영국이 아니다.

정치인들은 미국이 영국 금융권 죽이기에 나섰다며 초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론 맨 노동당 의원은 시티의 금융 비즈니스를 월스트리트로 빼앗아가려고 미국이 영국 은행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상황은 미국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다.

리보 사태의 당사자인 영국은 물론 세계 주요국은 리보를 대체할 수단을 마련하기 위해 분주하다.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금융서비스의 핵심이랄 수 있는 ‘신뢰’가 무너진 이상 런던이 위상을 회복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금융 인재 스카우트 업체인 아스트베리 마스덴이 영국 트레이더와 딜러들을 상대로 최근 조사한 결과는 의미심장하다.

투자은행 관계자 중 3분의2는 홍콩 상하이 싱가포르를 10년 안에 세계 최고의 금융센터가 될 것으로 여겨지는 도시로 꼽았다.

10년 뒤 런던이 중심이 될 것으로 예상한 응답은 5분의1에 그쳤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영국에서, 그것도 로마시대부터 명성을 쌓아온 런던마저 무너지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와 유로존 재정위기 사태를 비롯해 리보 스캔들까지.

일련의 사건들은 국제사회에서 선진국 중심의 패러다임이 끝나가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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