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곤의 企와 經]전경련의 고용통계 조작

입력 2012-07-26 09:33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한정곤 산업부 팀장

미국 명문대학 존스 홉킨스는 원래 여성의 입학이 금지된 남자대학이었다. 30~40년 전 성차별 금지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자 거센 논란 끝에 여성 입학을 허용했다. 그런데 몇 년 뒤 깜짝 놀랄 만한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재학 중인 여학생의 33.3%가 교수와 결혼했다는 것이다.

사회통계학자 대럴 허프가 쓴 ‘새빨간 거짓말 통계’(원제:How to Lie with Statistics)에 나오는 이야기다.

3분의 1에 해당하는 높은 백분율은 여성의 입학허용에 따른 부작용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백분율 뒤에 감춰진 통계의 속임수였다. 당시 존스 홉킨스 대학에 등록된 여학생은 단 3명 뿐이었고, 이중 한 명이 교수와 결혼했던 것이다.

최근 비슷한 통계가 전경련에서도 나왔다. 주요 대기업의 신규 채용자 10명 중 4명이 지방대 출신이라는 것이다. 대기업의 지방대 홀대를 일반적인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취업시장의 인식과는 상반된 결과였다.

전경련은 지난 23일 배포자료에서 주요 기업 20개사의 2011년 지방대 출신 채용인용은 1만885명으로, 전년 대비 1246명 늘어 전체 채용인원 2만5751명의 42.3%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2009년 39.1%, 2010년 38.8%에 이어 채용 규모가 계속 확대되고 있다는 게 핵심이었다.

특히 정부가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에서 지역인재 신규 채용 비중을 30% 이상으로 권고하고 있다면서 대기업들이 지역 인재 선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의미를 강조했다.

그러나 전경련의 통계에는 ‘존스 홉킨스 대학에 재학 중인 여학생의 함정’이 있었다. 배포자료에서는 언급하지 않은 ‘카이스트’와 ‘포항공대’를 지방대로 분류한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대전과 포항에 소재한 이들 대학을 지방대라 우기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취업시장에서 이들 대학이 지방대인가 하는 물음에는 전혀 사정이 다르다.

지난해 카이스트와 포항공대 졸업생 가운데 대기업 취업자는 500여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대학원 졸업생까지 합하면 2000여명에 달한다. 지난해 지방대 출신 대기업 취업자 1만885명의 20% 안팎에 해당하는 규모다.

지난달 6일 발표한 30대 그룹 고용 통계 자료에서도 똑같은 함정은 발견된다.

당시 전경련은 30대 그룹의 종업원 수가 2010년 100만명을 돌파한 데 이어 2011년에는 118만 5000명 수준을 기록하며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발표했다. 전년대비 증가율이 10.0%로 같은 기간 취업자 증가율(1.7%)에 비해 약 여섯 배, 임금근로자 증가율(2.5%)에 비해 약 네 배 정도 높다는 점도 강조했다.

유럽 재정위기 등 세계 경제 불안과 파나소닉·소니 등 종신고용의 대명사인 일본 기업들이 고용을 줄이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대기업은 꾸준히 고용을 늘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전경련이 동원한 수법은 간단했다. 신규 채용 외에 인수·합병한 회사의 기존 종업원까지 신규 고용 실적에 포함시킨 것이다. 이렇게 포함된 종업원 수는 최소 1만여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전경련이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대기업의 고용창출에 대해 홍보하려 하는 이유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한층 거세지고 있는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압박에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 대기업을 조금이라도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을 호도하고 왜곡한 홍보라면 차라리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오히려 전경련의 이 같은 무리수가 대기업에게는 더 큰 짐이 될 수도 있다. 전경련 스스로 반기업정서를 자초하고 있는 것은 아닌 지 되돌아보기 바란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하루 한 시간도 못 쉰다…우울한 워킹맘·대디의 현주소 [데이터클립]
  • 밀양 성폭행 사건 재조명…영화 ‘한공주’ 속 가해자들은? [해시태그]
  • [위기의 빈 살만] ① 네옴시티, 신기루인가...끊이지 않는 잡음
  • LTE 요금제, ‘중간’이 없다…같은 요금에 5G 6GBㆍLTE 250MB 데이터 제공
  • ‘20살’ 종부세 개편 초읽기…"양도·취득세까지 대개조 나서야" [불붙은 부동산세제 개편①]
  • 매크로 이슈 속 널뛰기하는 비트코인, 6만9000달러 선에서 등락 거듭 [Bit코인]
  • 엑소 첸백시 측 긴급 기자회견 "SM엔터 부당한 처사 고발"
  • 밀양 성폭행 사건 피해자 여동생이 올린 글…판결문 공개 원치 않는다
  • 오늘의 상승종목

  • 06.10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97,142,000
    • -0.87%
    • 이더리움
    • 5,143,000
    • -1.3%
    • 비트코인 캐시
    • 652,000
    • -1.95%
    • 리플
    • 696
    • -0.43%
    • 솔라나
    • 222,300
    • -1.81%
    • 에이다
    • 622
    • +0%
    • 이오스
    • 990
    • -1%
    • 트론
    • 164
    • +0%
    • 스텔라루멘
    • 140
    • +0%
    • 비트코인에스브이
    • 77,500
    • -3.49%
    • 체인링크
    • 22,330
    • -1.37%
    • 샌드박스
    • 583
    • -1.35%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