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경영진단’이 어려운 이유

입력 2012-07-02 10:23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박봉규 대성에너지 사장

회사 경영에 어려움이 닥치면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는 모두 컨설팅 회사로 달려간다. 우리 회사의 무엇이 문제인 지,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탈출할 수 있을 지의 해법이 궁금한 것이다. 몇 달이 지나면 두툼한 보고서가 책상 위에 놓인다.

그러나 “아니 이런 얘기 들으려고 비싼 돈과 시간을 허비했단 말이야? 이런 대안이라면 나 혼자 하루 저녁에라도 작성할 수 있겠다”라는 것이 많은 경우의 반응이다.

우리가 그렇게도 선호하는 경영진단의 결과가 모두가 공감하는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문제의 원인에 대한 진단이 잘못된 까닭이다.

조직의 문제점을 가장 잘 알고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그 조직 내부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제아무리 유능한 컨설팅회사에 경영진단을 맡겨도 결국 진단에 필요한 기초자료는 회사내부 사람들에 의해 작성될 수밖에 없다.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면서 사전에 작성하는 문진표에 내가 엉터리로 표시해 놓으면 제아무리 명의라도 내 병을 제대로 찾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반성에 바탕을 둔 진솔한 진단이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은 이유는 무엇보다도 내 이익 지키기가 밑바닥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모두가 자기 보호 본능을 가지고 있다. 조직도 마찬가지이다. 제아무리 조직이 잘되는 길이라 하더라도 치부가 들어나서 내 자리가 없어지고 내 목이 위태롭다면 제대로 된 자료를 컨설팅 회사에 제출하기 어렵다.

자기 이익을 지켜야하는 기득권 세력에게 해결책을 내놓으라고 하니 변죽만 울리는, 핵심은 비켜나간, 시간을 끌면서 사태가 다시 잠잠해 지기만을 기다리는 대안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제아무리 그럴 듯하게 포장해 내놓아도 포장 속에 담긴 내용은 내 이익은 결코 내놓지 못하겠다는 그것이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자기반성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새롭게 태어나기 어려운 것이다. 머리와 가슴 모두에서 변해야 산다는 절박함이 있는 경우에만 대안의 싹이 자라날 수 있다. 문제 학생들의 재활을 담당했던 어느 목사님으로부터 들은 얘기이다. 학교와 가정에서 냉대 받고 팽개쳐진 아이를 넘겨받아 사랑으로 위로해줄 때 눈물을 흘리면 그 학생은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내미는 따뜻한 손길에도 학생이 눈 똑바로 뜨고 선생님을 쳐다본다면 치유에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심한 경우 치료자체가 힘들다고 한다.

진단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진단에 참여하는 사람의 가슴에 상대에 대한 사랑이 없는 경우이다. 내 배가 부르면 상대의 배고픔은 잘 보이지 않은 법이다. 우리의 이성이나 머리는 이미 차고 넘치는 수준이다. 부족한 것은 상대가 당하고 있는 고통과 어려움이 나의 어려움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밥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사람을 향해 고기를 먹으면 되는데 왜 꼭 밥을 고집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경우와 같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조세개혁인 대동법은 최초 시행에서부터 전국으로 확대되는데 꼭 100년이 걸렸다. 세금부과의 기초를 가구단위에서 토지면적단위로 바꾸는 것이 이 법의 내용이다. 토지면적에따라 세금이 부과 되어야만 재산의 많고 적음에 따른 공평한 과세가 가능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양반사대부들의 눈에는 농토 없는 백성들의 애환이 보이지 않았다. 백성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면서 평민들의 어려움을 체험해본 김육과 같은 개혁가의 주장이 이들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로 들렸던 것이다.

세상살이가 각박하다. 양극화도 심각한 수준이다. 대학생들은 등록금 걱정, 졸업 후에는 취직이 걱정이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집에서 놀고 있는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가슴이 타들어간다. 자영업자, 비정규직, 회사에서 밀려날 처지에 있는 고령근로자들, 체력과 의욕은 있으나 일자리가 없는 은퇴세대들이 모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백가쟁명식 처방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안들이 내 가슴에 와 닿지 않고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내 치부를 들어내고 내 것을 먼저 내려놓아야만 그리고 상대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만 해결책이 보이는데 이 모두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확한 진단과 해결책의 제시를 원한다면 반드시 선행되어야만 할 일들이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지난해 가장 잘 팔린 아이스크림은?…매출액 1위 공개 [그래픽 스토리]
  • 개인정보위, 개인정보 유출 카카오에 과징금 151억 부과
  • 강형욱, 입장 발표 없었다…PC 다 뺀 보듬컴퍼니, 폐업 수순?
  • 큰 손 美 투자 엿보니, "국민연금 엔비디아 사고 vs KIC 팔았다”[韓美 큰손 보고서]②
  • 항암제·치매약도 아닌데 시총 600兆…‘GLP-1’ 뭐길래
  • 금사과도, 무더위도, 항공기 비상착륙도…모두 '이상기후' 영향이라고? [이슈크래커]
  • "딱 기다려" 블리자드, 연내 '디아4·WoW 확장팩' 출시 앞두고 폭풍 업데이트 행보 [게임톡톡]
  • '음주 뺑소니' 김호중, 24일 영장심사…'강행' 외친 공연 계획 무너지나
  • 오늘의 상승종목

  • 05.23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94,188,000
    • -1.39%
    • 이더리움
    • 5,287,000
    • +2.54%
    • 비트코인 캐시
    • 681,500
    • -0.87%
    • 리플
    • 724
    • -0.14%
    • 솔라나
    • 247,100
    • +0.41%
    • 에이다
    • 646
    • -2.27%
    • 이오스
    • 1,129
    • -3.17%
    • 트론
    • 160
    • -3.61%
    • 스텔라루멘
    • 150
    • -1.96%
    • 비트코인에스브이
    • 89,350
    • -1%
    • 체인링크
    • 22,780
    • +1.2%
    • 샌드박스
    • 609
    • -3.33%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