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합니다]'슈퍼 갑' 대형가맹점 횡포 막고…중소점과 형평성 맞춰

입력 2012-05-03 14:15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신용카드 수수료 34년만에 '대수술' 왜 했나

지난 2004년. BC카드와 이마트는 한바탕 맞붙었다.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이마트의 ‘승’. BC카드는 이마트에 신용카드 수수료를 1.50%에서 3.45%로 올려달라고 요청했다. 돌아온 건 7개월 간의 결제거부 뿐이었다. BC카드는 꼬리를 내리며 0.35% 인상에 만족해야 했다.

카드사의 굴욕은 지난해에도 있었다. 현대차는 지난해 11월 KB국민카드 등 7개 전업계 카드사에 신용카드 수수료를 1.75%에서 1.70%로, 체크카드는 1.50%에서 1.00%로 낮춰달라고 요청했다. 들어주지 않으면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엄포했다. 이 역시 승은 현대차였다.

카드 업계 고위 관계자는 “대기업 가맹점은 카드사에게는 갑 중의 슈퍼갑에 해당한다”며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거는 장사를 하지 않겠다는 거나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高수수료 불만, 둑이 터지다= 신용카드 수수료를 둘러싼 이해관계에는 가맹점과 카드사, 그리고 소비자가 얽혀있다. 수수료를 높이려는 카드사, 낮추려는 가맹점, 그들의 이전투구가 소비자 피해를 낳을 것이란 우려. 그러나 가만 들여다보면 ‘삼각’이라기 보다는 ‘사각’구도다. 가맹점은 대형가맹점과 중소가맹점의 위치가 판이하기 때문이다.

열위를 보였던 건 언제나 중소가맹점이었다. 중소가맹점은 카드사가 제시하는 수수료율을 수긍하는 데 그쳤다. 대형가맹점처럼 협상력 우위란 무기가 없었다. 지난 2007년부터 정부 주도의 중소가맹점 수수료 인하 정책이 시행됐으나 그들은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힘의 균형추가 미세하게 변하기 시작한 건 지난해 말부터다. 개미는 모여야 자기보다 큰 곤충을 사냥할 수 있다는 진리를 활용했다. 경제 침체로 인한 소득 감소는 그들이 행동에 나설 동인을 마련해 줬다.

한국음식업 중앙회 소속 7만여명의 회원은 지난해 10월18일 잠실에서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10만인 결의대회’를 가졌다. 올해에는 전국 자영업 연합체가 신한카드, 삼성카드에 대한 결제 거부 운동을 벌였다.

이 같은 목소리는 정치권에 반영됐다. 지난 3월에는 가맹점 수수료 책정에서 대형 가맹점의 협상력을 축소하는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총선과 맞물린 정치적 산물이란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오호석 직능인단체연합회 회장은 “신용카드사가 부가서비스를 준다해도 혜택은 대기업만 받았을 뿐이다”며 “영업이 잘 될 때는 부담이 없었지만 영업이 안되니 카드 수수료로 인한 고통이 크다”고 말했다.

◇정부 비판 쏟아진 공청회= 지난달 27일 열린 가맹점 수수료 개편안 공청회는 열기가 뜨거웠다.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공청회는 마련해 놓은 240여개의 좌석이 꽉 찼다. 꽉 찬 좌석 이외에도 사람이 몰려들자 주최 측은 추가로 의자를 날라야 했다. 250여권의 개선방안 책자도 일찌감치 동이 났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하나 같이 정부에 날을 세웠다. 세수 투명화란 논리로 신용카드 활성화 멍석을 깐 거는 정부였다. 조세정책을 위해 금융정책을 활용했다. 1997년에는 여전법을 도입해 가맹점의 가격차별을 금지했다. 1998년에는 소득세법을 통해 의무수납제를 신설해 신용카드 결제거부를 가로막았다. 한국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신용카드 판매가 민간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23.6%에서 2010년 57.0%로 급증했다. 신용카드 사용은 시작부터 기이했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였다.

박창균 중앙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가맹점 수수료 관련해서 최근의 논란은 과장하면 전적으로 정부가 만들어 높은 규제의 산물이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장기적으로는 정부가 만들어 놓은 인위적인 규제를 철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광기 중앙일보 경제선임기자는 “정부가 멍석을 깔자 카드사들은 최대한 환경을 이용해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등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며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원인제공자인 정부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카드사, 우리도 할말은 있지만… = 신용카드사는 불편하다. 겉으로는 “우리도 큰 틀에서 동의한다”고 말하지만 속내는 마뜩치 않다.

수수료 인하는 결국 수익 감소. 각 회사마다 다르나 신용카드 수수료 평균 2.0%를 손익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위지원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극단적인 경우 규제 3년차인 2014년에는 신용카드사의 이익 규모가 1340억원(2011년에는 2조440억원)까지 축소되고 이익률은 0.4%(2011년 4.5%)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더욱이 슈퍼 ‘정’이었던 중소가맹점의 힘은 커졌다. 정치 논리와 결부됐고 단체행동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런 판국에 대형 가맹점에 수수료를 인하하라는 요구가 곧이곧대로 수용될지는 미지수다.

지동현 KB국민카드 부사장은 “가장 큰 현실적인 어려움은 카드사들이 항공사, 쇼핑사, 영화관 등에 굉장히 많은 마케팅 비용을 지불하는데 이를 가맹점 수수료에 포함해서 내라고 하면 그들이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수수료율은 숫자라는 경제적 영역이다. 최근의 논의는 정치적 영역으로 넘어갔다. 합리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총론에는 누구나 동의한다. 그러나 1.9%, 2.0%, 2.1%라는 미세한 차이는 정치와 힘이라는 영역을 통해 결정될 수 밖에 없다.

박 교수는 “경제학자가 수수료율을 개선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만족할 수는 없다”며 “이제는 사회적 합의의 영역이다”고 진단했다. 수수료 개편안은 얽히고설킨 고차방적식이 됐다. 여하튼 간에 최종 안은 오는 6월까지 수수료 개편 특별팀에서 마련될 예정이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지난해 가장 잘 팔린 아이스크림은?…매출액 1위 공개 [그래픽 스토리]
  • 개인정보위, 개인정보 유출 카카오에 과징금 151억 부과
  • 강형욱, 입장 발표 없었다…PC 다 뺀 보듬컴퍼니, 폐업 수순?
  • 큰 손 美 투자 엿보니, "국민연금 엔비디아 사고 vs KIC 팔았다”[韓美 큰손 보고서]②
  • 항암제·치매약도 아닌데 시총 600兆…‘GLP-1’ 뭐길래
  • 금사과도, 무더위도, 항공기 비상착륙도…모두 '이상기후' 영향이라고? [이슈크래커]
  • "딱 기다려" 블리자드, 연내 '디아4·WoW 확장팩' 출시 앞두고 폭풍 업데이트 행보 [게임톡톡]
  • '음주 뺑소니' 김호중, 24일 영장심사…'강행' 외친 공연 계획 무너지나
  • 오늘의 상승종목

  • 05.23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94,687,000
    • -1.94%
    • 이더리움
    • 5,313,000
    • +3.04%
    • 비트코인 캐시
    • 681,000
    • -2.01%
    • 리플
    • 736
    • +0%
    • 솔라나
    • 240,000
    • -3.42%
    • 에이다
    • 653
    • -1.8%
    • 이오스
    • 1,150
    • -2.13%
    • 트론
    • 161
    • -3.59%
    • 스텔라루멘
    • 150
    • -1.96%
    • 비트코인에스브이
    • 88,900
    • -4.15%
    • 체인링크
    • 22,320
    • -1.24%
    • 샌드박스
    • 617
    • -2.37%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