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국책연구원 부러운 직업이라고요?"…비정규직 많아 '파리 목숨'

입력 2012-04-24 08:49 수정 2012-04-24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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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불안에 떠는 연구원들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이 지난 20일 과학의 날 기념식이 열린 국립중앙과학관 정문에서 정부출연 연구기관을 '정권과 관료의 시녀에서 국민의 연구기관으로 돌려놓으라'고 촉구하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에서 일한다고 하면 잘 모르는 사람들은 부러워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비정규직으로 고용되는 이들이 다른 여타 직종들 못지않게 많아요. 연구과제 수주가 줄어들면 해고 1순위로 파리 목숨과 마찬가지죠. 정부에서는 박사학위가 있는 전문기술자들은 스스로 밥벌이를 할 수 있다고 보고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했지만 이것이야 말로 학력 차별이죠. 계약이 만료된 후 다른 연구기관 정규직으로 가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워요.”

한 국책연구기관 비정규직 종사자의 하소연이다. 연구기관 종사자라고 하면 남부러울 만한 직업이라고 여겨지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들의 삶이 그리 녹록치만은 않다. 우리나라 ‘싱크탱크’라 불리는 곳에서 일하는 이들의 처우가 다른 업종에 별반 다를 게 없거나 더 나쁘다는 평이다. 이들 연구원들의 처우와 여건이 우리나라 경쟁력과 직결되는 만큼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4일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 따르면 2011년 8월 기준 23개 국책연구기관과 경인사연의 인턴직을 포함한 비정규직 종사자는 1700명으로 전체 4492명 중 37.8%를 차지했다. 10명 중 4명에 가까운 이들이 비정규직으로 종사하고 있는 것이다. 연도별 비정규직 비율을 봐도 △2009년 35.2% △2010년 37.7% △2011년 37.8%으로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이중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순으로 보면 △한국교통연구원, 65.8% △과학기술정책연구원, 58.3%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경제인문사회연구회, 48.4% △국토연구원, 48.0% 순이었다.

과학 분야 국책연구기관은 그 정도가 더 심각했다. 권영일 통합진보당 의원에 따르면 2011년 8월말 기준 기초기술연구회 소속 13개 출연연구기관의 전체 인력 1만600명 중 인턴직을 포함한 비정규직은 5725명으로 54%를 차지했다다. 이는 정규직 4875명보다도 더 많다.

출연연 중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국가수리과학연구소로 무려 71.6%나 됐다 그 뒤를 한국생명공학연구원(70.3%), 한국한의학연구원(70.3%)이 이었다.

최근 4년간 13개 출연연의 비정규직 비율 추이를 봐도 △2008년 50.5% △2009년 54.1% △2010년 49.3% △2011년 54.0%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구사업과 연구비는 매년 증가해 인력 증원이 필요함에도 ‘공공기관 선진화’계획에 따라 정부는 정원을 감축하고 필요한 인력을 비정규직으로 채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경진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정책국장은 “공공분야 연구원들의 비정규직 비율은 위험수위를 넘었다”며 “특히 과학기술분야 출연연의 비정규직 문제는 특히 더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실험이 많은 과학 분야의 특성 때문에 인력이 인문·사회 쪽보다 더 많이 필요한데 정부는 단기간 노동자, 박사·석사 후 연수과정 등 백화점식 형태로 연구생들을 비정규직으로 채용해 싼값에 일을 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정부가 청년 인턴 채용을 기관평가 지표로 만들어 연구기관에 청년 인턴을 채용하게 하고 있지만 비정규직만 양산할 뿐 실익이 거의 없다는 평이다. 현장에서 청년인턴으로 채용된 이들은 1년 미만의 단기계약으로 잠시 거쳐 가는 비정규직으로 스스로를 생각해 직업적 자긍심과 헌신성, 몰두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이라는 것.

연구 인력들은 제도적으로도 학력에 따른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개선 대책’에 이어 올 1월에는 ‘비정규직 고용개선 추진지침’을 발표했다. 하지만 비정규직에서 무기계약직(계약직과 정규직의 중간 형태의 고용 형태. 계약기간이 무기한이어서 대체로 정년이 보장돼 고용안정 측면에서 정규직과 비슷. 하지만 임금이나 복지 수준은 계약직 수준에서 유지되거나 그보다 못함) 전환 대상에서 박사학위 등 전문직 지식·기술자와 연구업무·지원 종사자 등을 제외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공공연구기관 비정규직 종사자들에게는 전혀 혜택이 없다.

이에 따라 낮은 처우와 고용불안 등으로 연구에 몰입하는 이들이 적어 국가 경쟁력 저하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다. 또 자율적·창의적 연구는커녕 정부의 입맛에 맞는 연구결과 사례가 나오는 것도 이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비판이다.

우리나라 국책연구기관이 국제적 명성이나 성과, 노벨상 수상자로 볼 때 세계적인 연구기관으로 도약하지 못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인문계, 이공계 기피현상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지적이다.

손진훈 충남대 교수는 “대학 등으로의 이직 때문에 출연연에서 40~50대의 중견연구원이 턱없이 부족하나 충원을 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며 “이러한 일방적 인력 이동은 출연연구원의 질적 저하 뿐 아니라 기술 축적에도 문제가 생긴다”라고 비판했다.

손 교수는 이어 “세계에서 가장 좋은 연구기관은 ‘연구원들이 가고 싶은 연구기관’이라는 조사결과가 있다”며 “정년, 연봉 임금 등 연구원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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