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청년을 말하다]‘88만원 세대’한국사회 구조적 불균형 공론화

입력 2012-04-19 08:50 수정 2012-04-19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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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독식의 냉혹한 현실 속 비정규직 전전 불행한 청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김춘수 ‘꽃’ 中>

어떤 대상이든 이름은 중요하다. 이름 자체가 대상의 존재를 결정하기도 한다. 대한민국 청년들에게도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이 있다. 이름을 붙여준 것은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와 기자출신 사회운동가 박권일씨다.

이들이 2007년에 펴낸 동명의 책을 통해서다. 두 사람은 우리 사회에 ‘청년’이라는 화두를 던졌고 많은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에는 그들 스스로 책의 절판을 선언했다.

◇ ‘청년의 불행’이라는 가혹한 시대적 진실 = 88만원세대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청년들이 놓인 가혹한 환경을 지적하고 세대간 불균형의 문제를 조목조목 짚어냈다. 이 책의 출간시점 2007년 이전부터도 아팠다. 그러나 세대의 문제와 청년의 문제를 공론화 한 것은 88만원 세대가 처음이다. 그때부터 ‘88만원 세대’는 대한민국 청년들을 지칭하는 보통명사가 됐다.

책 내용에 따르면 청년들은 앞선 세대가 겪지 않은 불행을 겪고 있었다. 그들은 외환위기 이후 변화된 경제 환경으로 유사이래 처음으로 승자독식의 냉혹한 경쟁을 겪었다. 이는 앞선 세대와 다른 점이다. 앞선 세대의 경우 이 정도의 경쟁에 노출된 적은 없었음에도 시기적으로 산업화로 인한 발전의 과실은 누릴 수 있었다.

산업화 시기의 청년들은 약관의 나이에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독립을 하는 것도 가능했다. 심지어 0점 대의 이른바 ‘선동렬 방어율 학점’을 맞고도 당당히 대기업에 입사할 수도 있었다.

토익이나 토플 같은 어학점수 자격기준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적어도 다가올 내일이 현재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가능한 시기였다.

대학 졸업 후에는 사상 최악의 구직난과 만나게 된다. 기업들이 신규 고용을 하지 않으면서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로 진입하는 문이 점점 닫혔다. 결국 비정규직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사회 데뷔가 늦어진 채 빈곤층으로 살아가야 한다. 혼인이나 주거문제를 스스로 해결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꿈에 가깝다.

알려진대로 88만원이란 당시 우리나라 비정규직의 평균 임금인 119만원에 20대의 평균 소득 비율 74%를 곱한 값이다. 대부분 비정규직인 청년들의 열악한 경제적 환경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부분이다. 미래를 설계할 수 없는데 희망이 있을 수도 없다.

◇ 88만원세대의 사회적 영향, 그리고 절판 = 종종 한 권의 책이 그 사회에서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꾸기도 한다. 88만원 세대 역시 우리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책의 출간과 함께 사회의 눈이 청년에 쏠렸다. 88만원 세대는 지난 5년간 27쇄 15만 부 가량이 팔려나갔다. 일반적으로 사회과학도서는 2만부를 넘기기 힘들다. 88만원 세대의 판매고는 이례적인 수치다. 단숨에 사회의 눈이 청년에 쏠렸다.

88만원세대의 출간 이후 사회적으로 청년이 딱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시사프로그램 등이 청년을 집중적으로 주목했고 청년들의 현실을 담은 문화공연이 기획됐다. 2010년에는 국내 첫 세대별 노조인 ‘청년유니온’이 등장해 청년들 스스로가 주어진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사회적 움직임에 나섰다.

정치권에도 변화가 생겼다. 각 정당은 저마다 ‘청년’ 장사에 나섰다. 청년들의 표심이 선거 결과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와 맞물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확산을 통해 청년들이 의식을 공유하기 시작하면서 가속화됐다. 각 정당은 지난 19대총선에서 저마다 청년 대표를 내세우며 청년의 권익을 생각하는 정당이라는 점을 강조하려고 애썼다.

책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88만원 세대의 유통기한은 5년에 불과했다. 출간 후 5년 만에 저자 우석훈 박사가 책의 절판을 선언하면서 ‘88만원 세대’ 청년들은 그들의 책 ‘88만원 세대’와 이별하게 됐다.

88만원 세대는 단순히 책으로만 볼 수는 없다는 평가다. 우리 사회에‘청년문제’라는 중요한 의제를 제시하고 공론의 장으로 끌어들인 주역이라는 점은 자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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