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재벌해체론']압박보다는 '시장 기능' 통해 사적이익 추구 예방해야

입력 2012-03-19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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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싱가포르 등 해외선 주주 사전승인제 방식으로 재벌 사적이익 추구 막아

▲지난 2월5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12년 통합진보당 총선승리 전당대회에서 당원들이 '재벌해체 서민복지'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최근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는 재벌해체론에 대한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첨예하다. 재벌해체론의 바탕에는 반재벌 정서가 담겨져 있다. 재벌이 오히려 사적 이익을 추구하면서 반 시장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반대로 상당수의 국가에서 시장 기능을 이용해 재벌의 사적 이익 추구를 예방하고 있다는 점을 내세워 제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싱가포르와 홍콩 등이다. 이들 국가의 기업환경이 전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은 국내 재벌개혁 방향에 던지는 시사점이 크다.

◇재벌에 대한 시선=재벌 비판의 핵심이 사적 이익 추구에 있다는 점에 있다는 것에 대해 이견이 없다. 국내 재벌의 반시장적인 행태 문제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돈의 향방에 따라 달라지는 점은 이를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재벌그룹들이 창업자의 아호를 따서 설립한 재단의 대부분은 총수의 사적 자금이 아니라 기업들이 출연한 자금이 바탕이다. 회사돈을 이용한 재단 설립과정에서 소액주주들의 실효성 있는 동의과정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반시장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국민적 비판은 적다. 재벌 총수가 다른 주주의 돈이기도 한 회사 자금을 사적 용도로 빼돌리는 것은 나쁘지만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빼돌리는 것은 우리 사회가 용인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국민들은 회사 기회가 사적이익에 사용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셈이다.

재벌개혁론은 주로 재벌의 소유 구조의 문제로 합목적성을 찾고 있다. 특히 재벌 소유구조 승계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상당수의 재벌에서 터널링이 발생하고 있다. 회사기회의 유용이다.

시장경제체제에서 최대 주주는 자신의 지분만큼의 이윤을 챙겨야 한다. 그러나 국내 재벌 소유와 경영구조는 회사의 모든 기회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사적 이윤 추구를 위해 회사 기회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재벌들이 각종 규제를 시장질서에 반하는 ‘대기업 때리기’로 포장하면서 정작 반시장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반면 재벌개혁론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은 재벌의 순기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각에서는 실효성은 없으면서 가지 수만 많은 규제가 곧 문제가 된다는 점을 무시하고 겉으로 나타난 증상만 억제하려는 대증 요법이 대부분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바람직한 대안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다각화와 규모 확대를 재벌 자율성에서 바라보고 정부의 재벌정책을 소비자중심론에서 고민하자는 내용도 나오고 있다.

◇싱가포르와 홍콩의 경우는=세계은행이 발표하고 있는 각국 기업환경 평가 자료는 국내 재벌정책에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2011년 기업환경 평가에서 1위는 싱가포르이고, 2위는 홍콩이다. 싱가포르는 지난 2006년 이후 1위 자리를 내놓고 있지 않다. 홍콩은 2005년 7위에서 매년 순위를 높이며 2010년부터는 2위 자리에 눌러 앉은 상태다.

이들 두 국가는 공통점이 있다. 현재 국내 재벌 문제의 원인인 회사기회 유용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시장의 제도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싱가포르와 홍콩 기업들은 우리나라와 소유지배구조가 유사하다. 두 국가는 일정 규모 이상의 특수관계인 거래에 대해 주주의 사전적인 승인을 받도록 하는 규제를 도입하고 있다. 홍콩 및 싱가포르와 같은 규제 방식은 다른 선진 시장에서도 나타나지만 제한적이다. 이는 주식소유의 분산 때문에 지배대주주가 없는 경우가 많아 특수관계인 간 거래의 유인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신주 발행에서도 홍콩과 싱가포르는 발행 주식수에 상관없이 주주총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재벌 해법 시장에 있다=우리나라 법령은 재벌의 사적이익으로 이어지는 특수관계인과의 거래에 대해 이사회 승인과 사후 공시를 요구할 뿐이다. 이사회 자체가 소수 최대주주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실효성이 없는 제도다. 그나마 최대주주와 경영진의 견제를 위해 이사회에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만 독립성이 매우 약하기 때문에 이사회결의를 통한 사전규율방식의 효과는 미비한 실정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법령과 재벌경영 현실을 고려하면 싱가포르와 홍콩의 사례는 현재 국내 재벌개혁론의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시장에서 이사회가 아닌 주주총회의 의결권을 강화하는 등 시장의 기능을 살려 현재의 재벌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주총회의 기능을 재벌 정책과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조금의 손질이 필요하다. 지배주주가 본인 이외에도 계열사를 통해 상당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순환 출자 상황에서는 이해관계가 있는 주주들의 의결권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주주총회를 통한 사전규율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주주 참여를 높일 수 있는 소집기간 연장과 전자투표제 도입 등도 고려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프레임의 변화 필요=한국개발연구원 조사 자료에 따르면 국민의 57%는 정상적인 기업이윤이라도 그 일부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공무원의 절반이상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경제전문가 10명 중 3명 이상도 같다. 이런 가운데 반재벌 정서가 강하다는 것은 국민과 기업간의 프레임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스웨덴은 조세부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고 우리나라 재벌체제와 마찬가지로 대기업들은 소수의 총수가문이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반기업정서가 크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스웨덴 국민들이 기업의 사회화와 국유화를 반대한 것은 민간 기업에 대한 신뢰가 컸기 때문이다. 민간기업들은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그만큼 봉사를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스웨덴 국민과 기업이 스스로 이념성보다 현실적인 합의를 추구한 셈이다.

한국경제의 성장 구조를 보면 반재벌 정서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규제로 이어진다면 국가경제는 다시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다. 또 국민들에게 반재벌 정서를 버리라고 요구할 수도 없다. 국민정서를 반재벌 정서로 빠뜨리지 않게 재벌들의 노력이 중요한 것이다. 현재의 반재벌 정서에 따른 재벌개혁론의 해답을 보여 줄 수 있는 당사자가 재벌인 셈이다. 일본의 재벌 개혁은 대중의 시선이 사익을 추구하는 재벌들의 행동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시동이 걸렸다. 반재벌 정서가 공황을 배경으로 정치논리로 발전하면서 재벌을 해체하고 제약하게 만든 것이다.

정치권도 재벌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바로잡고자 한다면 각종 규제안만 쏟아낼 것이 아니라 경제적 권력의 남용을 방지하고 시장을 공정하게 만들기 위한 제도를 통해야 한다.

정치권은 현재의 재벌개혁론이 정당정치가 대중들의 정치적 욕구를 정치체제로 끌어들이지 못해 발언권이 약해지자 이에 대한 미봉책으로 재벌을 표적으로 삼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에 따라 현재 정치권의 문제인식을 시장 의 자율적 기능을 살리는 입장에서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당정치는 시장 개입의 유혹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재벌 개혁을 통한 시장개입은 오히려 혁신과 경쟁력에 기초해 소비자의 선택을 받으려는 기업인보다 정부의 특혜를 추구하는 기업인을 유리하게 만들면서 공정 경쟁을 저해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는 과거 한국 재벌이 성장하면서 나타난 문제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기업집단의 경제력 증대, 산업구조의 고도화와 전문다각화, 계열사 간 거래와 시너지효과, 기업성과와 자본시장의 견제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해 경제학적으로 논쟁해 판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재벌의 순기능을 살리면서 주변적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국민의 인식이 우선 변화해야하며 경제 교육에 대한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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