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한국정부의 ‘데쓰노트’

입력 2011-12-01 11:28 수정 2011-12-01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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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신 사회생활부장

‘데쓰노트(Death Note)’. 2000년대 중후반 일본에서 가장 큰 인기를 모은 만화책이다. 주인공은 정의감에 불타는 고등학생 야가미 라이토. 천재소리를 듣는 인물로 물이다.

경찰 고위 관리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라이토는 법관의 꿈을 키우지만 여차저차한 경험을 하면서 세상은 법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깨닫는다.

썩을 대로 썩은 세상, 악인이 판치는 세상에 넌더리가 난 라이토에게 어느날 ‘데쓰노트’라는 공책을 얻게 된다. ‘데쓰노트’는 이름을 적어 넣으면 그 이름의 주인공이 죽는 그야말로 죽음에 이르는 문과도 같다.

라이토는 이것을 이용해 세계의 악질 범죄자들을 죽이기 시작한다. 그러다 자신이 저승사자가 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되면서 스스로를 세상에 각인시키고자 한다. 라이토의 이야기는 암울한 시기를 겪고 있는 현대인의 우울한 세태를 반영한 것으로 평가받으면서 히트를 쳐 에니메이션과 영화로도 제작됐다.

실제로 이런 물건이 있다는 생각.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보지 않을까. 매일 나만 못살게 구는 직장 상사라든다, 말 많고 책임을 떠넘기는 선(후)배라도. 혹은 소중한 애인을 빼앗아간 어떤 잘 생긴 남자를 생각하면서 자신만의 ‘데쓰노트’에 이름을 써 넣고 싶지 않겠는가 말이다.

매일 매일 이런 상상을 하면서 현대인은 그날의 고통을 견뎌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만의 ‘데쓰노트’는 삶의 윤활유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데쓰노트’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사회는 정말 끔찍하게 돌아갈 것이 자명하다. 도처에서 죽어나가는 시체들로 도시는 썩은 내가 진동하고 모든 사람들은 공포에 떨게 될 것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먼저 죽일 수밖에 없는 아비귀환의 혼란 상태. 생각도 하기 싫은 일이다.

이웃나라 일본의 작가가 쓴 작품이지만 기자는 가끔 실제는 우리나라에 ‘데쓰노트’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적어도 ‘기업을 죽이는’ 노트가 한개쯤은 존재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도 있다.

2011년은 어느 해보다 기업이 숨죽인 한해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마도 올해처럼 기업의 경영자들이 정부 관료의 호출을 많이 받은 일이 있었던가. 이들은 모두 관료만 만나고 오면 큼지막한 글자가 새겨진 종이에 친필 사인을 하고 나온다. 사인을 하지 않고 버티면 조만간 신문이나 언론에 ‘세무조사’니 ‘직권조사’니 하면서 파렴치한 기업으로 보도된다.

가장 많은 타격을 입은 곳이 식음료업계와 대형 유통업계다. 원유가격 인상을 놓고 줄다리기를 했던 우유업계는 올 3분기 모두 마이너스 성장을 피하지 못했다. 식품업계도 마찬가지. 영업이익률이 평균 4~5%대에 불과한 식품업계는 올해 이익률이 1~2%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장사를 하니 못하니 하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나마 규모가 큰 대형 유통업계는 식품이나 우유업계에 비해 장기간 버텼다고 볼 수 있지만 과정은 혹독했다. CEO가 해외 출장도 마음대로 못가고 공정위니 국회니 공청회니, 곳곳으로 호출 당하는 수모를 감수해야 했다.

우리 정부의 데쓰노트는 일본 만화 속 주인공의 데쓰노트와 다르다. 만화 속 주인공 라이토는 세계적인 명탐정의 추적을 받으며 위축되기도 하지만 우리의 데쓰노트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있다. 견제장치도 없어서 적어 넣기만 하면 모든 것이 뜻대로 성취되는 것이 우리 정부의 데쓰노트다.

대부분 기업의 내년 사업계획 수립이 늦춰지고 있다고 한다. 대내외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겠지만 혹시 정부의 데쓰노트에 이름이 적히지 않는 방법을 고민하느라 그런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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