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흑산…조선 후기 전통사상과 천주교의 충돌

입력 2011-10-2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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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지음/학고재 펴냄/1만3800원/416쪽

김훈의 신작 장편소설 ‘흑산’은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조선 사회의 전통과 충돌한 정약전, 황사영 등 지식인들의 내면 풍경을 다룬다. 당시 부패한 관료들의 학정과 성리학적 신분 질서의 부당함에 눈떠가는 백성들 사이에서는 ‘해도 진인’이 도래하여 새 세상을 연다는 ‘정감록’ 사상이 유포되고 있었다. 서양 문물과 함께 유입된 천주교는 이러한 조선 후기의 혼란을 극복하고자 한 지식인들의 새로운 대안이었던 셈이다. 작가 김훈은 천주교에 연루된 정약전과 그의 조카사위이자 조선 천주교회 지도자인 황사영의 삶과 죽음에 방점을 찍고 ‘흑산’을 전개한다.

등장인물들은 20여 명이 넘는다. 이 또한 김훈 소설 가운데 최다 등장인물이다. 정약전과 황사영의 이야기를 한 축으로, 조정과 양반 지식인, 중인, 하급 관원, 마부, 어부, 노비 등 각 계층의 생생한 캐릭터들이 엮어가는 이야기가 ‘흑산’의 장관을 이루는 또 다른 축이다.

작가 김훈은 ‘흑산’의 조선 민초들의 참상을 소름끼치는 묘사력으로 그려낸다. 서너 달에 한 번씩 바뀌는 수령을 위해 송덕비를 세우다 농사를 작파하게 된 백성들의 상소(22쪽), 흙떡을 쪄먹고 공납을 피해 어린 소나무 뿌리를 뽑아 던지는 흑산 주민 장팔수의 절규(196쪽), “주여, 우리를 매 맞아 죽지 않게 하소서. 주여, 우리를 굶어 죽지 않게 하소서”(본문 58쪽)라고 기도하는 오동희의 언문 기도문에서 조선의 민초들은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피폐한 삶을 견뎌간다.

천주교도들을 도륙하라며 다급히 자교를 내리는 대왕대비 김씨, 황사영을 체포하기 위해 전직 포도청 비장 박차돌을 이용하는 우포도대장 이판수, 유배지 흑산에서 왕과도 같은 권력을 휘두르는 수군진 별장 오칠구 등이 전통과 근왕주의적 질서를 지탱하려는 인물이다. 반면 어부 장팔수를 비롯해 조풍헌, 정약전 형제의 맏형 정약현 집안의 면천 노비로서 황사영을 돕는 김개동과 육손이 등은 조선 후기 신분 질서의 해체상과 혼돈을 드러내는 인물들이다. 실제 천주교 탄압의 빌미가 되기도 했던 여신도들의 활약은 소설 속에서 길갈녀와 강사녀 등의 헌신으로 형상화된다.

특히 마부 마노리는 북경 사행을 따른 길잡이의 경험으로 북경 교회와 황사영을 잇는 밀사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또한 배교한 천주교도이자 전직 포도청 비장 박차돌이 이중 첩자로서 쫓는 자와 쫓기는 자를 오가며 벌이는 역할과 여동생 박한녀와의 비극적인 해후와 이별은 극적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소설적 재미를 만끽하게 만든다. 이렇듯 ‘흑산’은 마치 대하소설의 스케일을 방불케 하는 높은 완성도와 서사 구조로 독자들의 이목을 끝까지 붙들고 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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