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오픈카...기아산업 '무모한 도전'

입력 2011-08-12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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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를 달려8온 한국자동차] ⑩1993년 英스포츠카 '로터스'인수…성능 좋았지만 판매에서는 참패

▲넓고 낮으며 가벼운 차체덕에 크레도스에 얹은 1.8리터 최고출력 136마력 엔진은 차고 넘치는 힘을 지녔다.
1993년말, 당시 기아산업은 극비리에 LHT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LHT는 ‘Lotus High Tech’를 의미하는 것으로 영국의 소규모 수제 스포츠카 메이커인 ‘로터스’로부터 2인승 로드스터 ‘엘란(Elan)’의 생산설비와 설계, 모델을 인수해 국내에서 조립·생산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회사 내부적으로 엘란의 도입은 꽤 부정적이었다. 프라이드와 캐피탈, 콩코드를 출시하며 이제 막 대량생산 체제가 안정화되기 시작한 기아산업에게 수작업을 통한 소규모 생산은 수익성이 없었다. 연간 1000대를 생산해 판매한다고 가정하면 오히려 40억~50억원의 손해를 볼 처지였다.

◇현대차도 꿈꾸지 못한 2인승 로드스터를 개발하다=그러나 엔지니어 출신 전문경영인 김선홍 회장을 비롯한 최고경영진의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강했다. 개발과 판매, 마케팅 등 각 분야 실무진들은 수익성이 부정적이라며 엘란 도입을 극구 반대했으나 경영진의 의지는 뚜렷했다.

오너경영 중심의 현대차와 대우차, 그리고 이제 막 쌍용그룹에 인수돼 새로운 둥지를 튼 동아자동차의 경우 총수의 한 마디가 법이었다. 그러나 엔지니어 출신이자 전문경영인인 김선홍 회장 체제의 기아산업은 실무진의 반대의사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굽히지 않고 2인승 로드스터 출시에 강한 의지를 보인 이유는 분명했다. 공업합리화조치 해제 인후 승용차 생산에 뛰어든 기아차는 분명 현대차와 대우차보다 한 걸음 뒤처져있었다. 이를 만회할 최고의 히든카드는 앞선 주자들이 만들지 않는 새로운 모델을 들여와 틈새 시장에 뛰어든다는 전략이었다.

차를 많이 팔아 회사를 배불려주기 보다 ‘기아산업’의 브랜드 이미지를 앞세우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한 마디로 걸출한 ‘이미지 리더’가 필요했고 2인승 스포츠 로드스터는 더없는 선택이었다.

이제 막 ‘죽음의 경주’로 불리는 파리-다카르 랠리에서 1세대 스포티지가 완주에 성공했던 터라 개발진의 의지는 하늘을 찌를 때였다.

결국 기아산업은 경영난에 빠진 로터스로부터 엘란 사업부문을 사들였고 생산설비와 설계도를 넘겨받았다. 엘란을 제외한 로터스는 말레이시아의 자동차 기업 ‘프로톤’에 팔렸다.

엘란 도입에 강력한 의지를 내비친 주인공은 김선홍 회장. 당시 수없이 이어지는 제품기획회의에 꼬박 참석했던 김선홍 회장은 엔지니어답게 갖가지 질문을 퍼부어 실무진들을 당황케했다는 후문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당시 김선홍 회장을 수행했던 비서에 따르면 엔지니어로서의 김 회장은 누구보다 엘란 도입에 적극적이었다. 그리고 경영진과 개발진에게 스포츠카의 존재 당위성을 강조하곤 했다.

“자동차라는게 그 나라 산업수준의 척도입니다. 그리고 스포츠카는 자동차 기술의 상징입니다. 이제 우리도 물량기준으로 세계 7위 수준이 됐으니까 제대로 된 스포츠카 한대 쯤은 있어야 합니다.”

김선홍 회장의 지론이다.

◇스타트와 코너링에서 티뷰론을 압도하다=결국 1996년 7월, 경기도 광명 소하리 공장 한켠에서 엘란이 첫 생산에 돌입했다.

이미 스쿠프를 시작으로 티뷰론을 내놓은 현대차를 단박에 앞지를 수 있는 경량 로드스터를 목표로 개발에 돌입했던 엘란은 양산 직전까지 목표 수치를 맞추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와 연구를 거듭했다.

출시 직전까지 완성해야 할 목표는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 가속에 7.8초 이내, 최고시속 210km 이상이 목표였다.

1996년 당시 국내상황을 감안하면 엄연한 스포츠카다. 그러나 엘란은 엄밀히 따져 스포츠카가 아닌, 수동식 소프츠톱을 갖춘 스포츠 로드스터다.

차 지붕이 열리는 오픈카는 지역에 따라 컨버터블과 오픈카, 카브리올레 등으로 규정된다. 여기에 스포티한 엔진을 얹고 달리기 성능을 강조한 차들이 로드스터로 불린다. 엘란이 바로 이 로드스터다.

엘란은 일반 승용차지만 말랑말랑한 모노코크 차체가 아닌 차체 중앙에 든든한 뼈대를 지닌 ‘백 본 프레임’ 방식이었다.

요즘 나오는 일반 세단의 지붕을 잘라내 오픈카로 만들면 당장에 보기는 이쁘겠으나 차체는 금세 ‘동강’ 부러지고 만다. 무거운 앞뒤 차축과 무게를 고작 차체 바닥으로만 지탱해야하니 쉽게 부러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오픈카의 경우 차체 곳곳을 강화한다. 무게가 무겁고 연비가 나쁘며 같은 엔진이라면 주행성능이 뒤쳐진다. 2인승 로드스터인 엘란 역시 마찬가지다. 차체 강성을 위해 앞뒤 차축을 프레임으로 지탱하고 이 둘을 중앙 프레임이 붙잡는다.

당시 엔진은 크레도스에도 장착했던 직렬 4기통 1.8리터 T8 엔진. 로버사의 기술을 바탕으로 국내 기술로 새롭게 개조한 엔진으로 뛰어난 출력과 연비로 출시 첫 해 ‘장영실 상’을 수상한 엔진이다.

전륜구동 방식에 최고출력 136마력을 내는 엘란은 출시와 동시에 티뷰론을 단박에 제쳤다. 스타트와 코너링에서 일반 양산모델로 태어난 티뷰론은 엘란을 따라올 수 없었다.

굽이치는 강원도 산길을 달릴 때면 경쾌하게 언덕길을 치고달리며 앞차를 가볍게 추월하는 엘란과 달리 티뷰론은 2.0 자연흡기 엔진에 불과했고 서스펜션의 안정화도 부족했다. 고속도로에서 한계속도로 맞붙지 않는 이상 엘란은 티뷰론에 뒤질게 없었다.

그러나 예상대로 엘란은 판매면에서 티뷰론에 참패하고 말았다. 제조원가만 2500만원에 달했고 3000만원에 육박한 차 가격은 당시 국내 자동차 수요자들에게는 부담이었다.

그러나 김선홍 회장의 의지로 개발된 엘란은 새로운 로드스터에 대한 기술력를 일깨워주었고 기아산업의 의지를 끌어올렸다. 나아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홍보효과를 누리며 무형의 소득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엘란 출시로 인한 적자 규모는 회사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었으나 여느 자동차회사와 분명 다른 구조였다. 연구원이 신차개발에 강력한 의지를 보이면 경영진이 수익성을 앞세워 이를 거절하는 것이 아닌 정반대의 경우였기 때문이다. 결국 기아산업은 1997년 경영악화로 인해 부도를 맞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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