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배우 차인표의 두번째 소설 '오늘예보'

입력 2011-06-24 14:08 수정 2011-06-24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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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고단한 그대, 희망 놓지 마세요

▲연합뉴스
IMF 사태로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은 1998년 봄, 배우 차인표는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건너다 한 남성이 한강을 바라보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목격한다. 강남에서 여의도까지 오는 동안 그런 사람은 여럿 있었지만 차인표는 용기가 없어 그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지 못한게 미안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은 애처로운 사연을 가진 세 남자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독자는 이 책에서 공감대를 느낀다. 그 이유는 아마 주인공들의 인생에 우리 삶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막다른 골목에 선 나고단, 이보출, 박대출은 각자 다른 ‘피치못할 사정’을 가지고 있다. 나고단의 부모는 어렸을 때 돌아가셨고, 불임증으로 자식도 없으며 사랑했던 여자는 수영강사와 눈 맞아 도망갔다. 나고단은 마음 붙일 곳 없는 세상을 떠나기 위해 한강 앞에 섰지만 공익 근무 요원의 “자살하려면 내 구역 아닌 곳에서 하라”는 말을 듣고 고개를 떨군다.

엑스트라 배우 이보출은 일당 4만원을 벌기 위해 자기보다 나이어린 엑스트라 반장에게 굽신거린다. 나이가 한참 어린 주연 배우들은 왕 대접 받으며 드라마를 준비하지만, 이보출은 한 겨울 포졸역을 맡아 장화도 아닌 짚신을 신고 기다려야 한다. 그마저도 짚신에서는 먼지가 나기 때문에 버스기사에게 눈치가 보여 휴식시간에도 버스 안에 들어갈 수 없다.

전직 조폭 박대수는 조폭의 세계에서 손을 떼고 싶지만 그에게는 병마와 싸우고 있는 어린 딸이 있어 어떻게든 생계를 이어 나가야 한다. 검은 세계에서 벗어나려는 마음도 여러번 먹었지만 배운 재주가 없던 박대수는 결국 남이 떼먹고 받지 못한 돈을 대신 받아주러 다닌다.

나고단의 인생에서는 세상에 홀로 남겨진듯한 외로움이, 이보출의 인생에서는 출세하지 못한 이들이 서열에 맞춰 굽신거려야 하는 슬픔이, 박대수의 인생에서는 즐거운 일 하나 없지만 가족 때문에 그대로의 인생을 걸어야 하는 서글픔이 배어 있다. 눈치챘을지 모르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고단한 삶의 주인공은 단지 책속의 주인공이 아니다. 우리의 삶을 주인공에 녹여냈을 뿐이다.

지난 2007년 발간한 ‘잘가요 언덕’에 이어 배우 차인표가 두 번째로 출간한 장편소설 ‘오늘예보’에서는 고단한 삶의 이야기를 차인표식 해석으로 풀어내기도 했다. 나고단의 자살 시도에 “자살하려면 내 관리구역을 벗어나서 해 달라”는 공익 근무요원의 말은 독자에게도 비수가 되어 꽂힌다.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청년의 말이 오히려 우리에겐 익숙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일상도 이들처럼 가끔은 지치고, 가끔은 차갑고, 가끔은 고독하다.

남의 죽음이 나에게 귀찮은 일이 되어버리는 곳에서 독자는 이들에게 “그래도 계속해서 살라”는 따뜻한 말을 건네기도 힘들다. 그들에게 억지로 살라고 강요할 만큼 따뜻한 세상이 아님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그들이 사는 그 가혹한 세상에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하지만 독자와 이 책의 주인공에게 차인표가 던지고자 했던 말은 뭘까. 세상에 혼자 남겨졌던 나고단, 이보출, 박대수가 좁은 세상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인연이 된 것처럼, 나, 가족, 그리고 한가닥 남아있는 마지막 희망을 바라보자는 말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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