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質 향상은 뒷전…'순위'에 목매는 학교·교수

입력 2011-06-14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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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무엇이 문제인가]<중>추락하는 경쟁력

“제가 학생들 발표 들으려고 비싼 등록금 내는 것 아니잖아요. 새 학기가 시작되면 첫 시간에 조 짜고 그때부터 종강할 때까지 발표가 이어집니다.”

교수들이 발표수업만 선호하거나 몇 년째 같은 커리큘럼으로 진행하는 등 국내 대학 수업의 질이 매우 떨어진다는 학생들의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체감 등록금이 높은 이유는 비싸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서울 M대학 경영학과 4학년 오모(28)씨는 대학교의 수업에 대해 “교수들이 학생에게 수업을 떠넘기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A대학교 시간강사 박모(38)씨는 “발표수업은 학생들의 발표 능력과 주도적인 학습 능력을 배양하려는 본래 취지와 다르게 교수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향으로 변질된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 질적으로 열악한 한국의 대학교육 서비스=발표수업만이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학의 교육 여건은 국제적으로 최하위 수준이다. 교육의 질적 수준을 가늠하는 주요 지표인 '교원 1인당 학생 수'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OECD 평균인 15.8명의 두 배가 넘는 32.7명에 달했다.

학습자료 구입 예산도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 따르면 대학이 재학생 1인당 사용하는 자료구입 예산은 국내 1위인 서울대가 25만원으로 미국 대학중 꼴찌인 27만원보다 적었다. 도서관 좌석 수도 턱없이 부족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학생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세계 2위인 등록금에 비해 대학이 학생에게 쓰는 돈도 적다. 우리나라 대학들이 학생 1인에게 쓰는 돈은 8920달러(약 960만원)로 OECD 평균인 1만2907달러(약 1390만원)에 못 미친다. △미국 2만7010달러 △스웨덴 1만8361달러 △일본 1만4201달러 등 선진국에 비해 초라한 액수다.

◇수업 뒷전인 이유는 ‘대학평가 순위’=그렇다고 교수들이 한가한 것은 아니다. 다만 강의 준비가 아닌 연구논문 준비로 바쁘다. 교원업적 평가에서 연구실적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다 보니 실상 교수들로서는 논문 편수를 늘리는 데 급급하게 된다.

서울소재 사립대 A교수는 “국내 이공계 대학교수들은 자다가도 SCI(국제 과학기술 논문 색인지)라는 말만 들으면 벌떡 일어선다는 말이 있다. 정부가 특정 프로젝트에 대한 참여대상을 선정할 때‘SCI 등재 논문 5편 이상’으로 자격을 정하기도 한다. 논문 작성에 급급하다 보니, 강의 준비는 뒷전이 되기 십상이다”고 말한다.

학생들에 대한 교육 서비스의 질이 낮아지는 것은 앞서 교수들이 학생들을 교육하는 것보다 연구 논문 수에 집착하도록 만드는 교원평가제도 때문이다. 주요 대학평가의 평가항목 중 교수 연구분야의 배점이 가장 큰 탓으로 교육의 질적 상승과 무관하게 불필요한 경쟁이 벌어지는 상황이다.

대학들은 불필요한 경쟁을 유발하는 대학평가를 비판하면서도 신입생 유치와 졸업생의 취업에 영향을 미치는 대학평가에 고분고분할 수 밖에 없다. 학교 외부에서 대학의 명성과 경쟁력을 평가하는 데 있어 영향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순위-수업 질 저하-학생들의 매너리즘’악순환=일부 학생들은 형식적 수업에 안주하기도 한다. 대학교 시간강사 박모(38)씨는 “일부 학생들은 하던대로 하자는 식으로 새로운 시도를 싫어한다”며 “이제 와서 제대로 해보려고 해도 학생들이 ‘피곤한 강사’로 낙인 찍고 호응하지 않을 것”이라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대학평가 기준에서‘수업 만족도’와 같이 학생들이 체감할 수 있는 교육의 질적 지표는 없다. 대학들이 학생보다 대학순위를 우선시하고 교수들이 강의보다 연구를 우선시하는 구조에서 탈피하지 못한다면 대학 교육의 질적 개선은 요원해 보인다.

대학교 답지 않은 수업의 책임을 교수 자질로만 돌릴 수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 사립대의 모 교수는 “가르치는 본분을 잊은 교수도 문제지만 깊이가 있는 강의보다 학점 잘 주는 강의만 골라 듣는 학생들도 무능한 교수를 양산하는 공범”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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