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희의 중국여행]윈난성 쿤밍 서산 삼림공원

입력 2011-02-28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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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1850m 도심속 자연 쉽터…몸도 마음도 ‘녹색’으로

봄. 겨우내 모습을 감추었던 나무들은 잎을 피우고 씨앗이 '퐁'하고 싹을 틔우는, 나는 그 계절을 좋아한다. 연푸른 이파리 살랑살랑 흔들어대는 봄날의 서성이는 바람도. 그래서 삼십 줄에 혼자 떠나는 여행지로 중국 윈난(雲南)을 택했는지 모른다. 살아있는 많은 생명들이 땅 속으로 숨어드는 2010년 11월, 그렇게 나는 쿤밍행 비행기에 올랐다.

50일간 여행의 기착지, 쿤밍에서는 서산에 올랐다. 서산은 앞으로 내게 펼쳐질 날들의 예행연습장이자 시험장이었다. 그것은 해발 1850m의 쿤밍에서, 앞으로 더 높아질 고도에 적응하기 위한 연습이고 걷고 또 걷겠다던, 그래서 지쳐서 쓰러질 때까지 걸어보고 싶다, 하고 스스로 각오를 다진 나를 처음 시험해보는 곳이었다.

헌데 시험장이라기엔 이 너무도 아름답지 않은가. 도심 속에 이렇게 아름다운 숲을 품고 있을 줄이야! 전동카가 지나다는 만큼 아스팔트로 낸 길이 자칫 황량해 보일 수도 있을 텐데, 숲에 난 오솔길처럼 길 양쪽으로 무성하게 우거진 나무들이 그늘을 내어준다. 롱먼(龍門)을 향해가는 발걸음이 절로 가벼웠다.

삼림공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주요 산책로-관해로(觀海路)를 따라 걷는 내내 상쾌하다. 도심과는 판이한 흙내음이 코끝을 자극한다. 중국 국가 <의용군행진곡>의 작곡자 니에얼(?耳)묘에서 롱먼까지 그렇게 나는 서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길 왼편에는 우거진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윈난성 최대 담수호인 뎬츠(?池)가 줄기차게 이어진다. 잠시 걷기를 멈추고 호수를 바라봤다. 오랜 세월 동안 윈난의 대지를 살찌운 젖줄답게 넉넉하다. 새파란 호수와 파란 하늘이 땅과 천지를 가늠하기 어렵게 만든 화창한 날씨도 한몫 했으리라.

숲속에 난 길을 따라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걸었던 1시간. 롱먼이 좀 더 멀리 있었으면 했다. 숲속 음이온 때문이었을까. 걸을수록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덩달아 머리까지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가진 그릇에 걸맞지 않게 꾹꾹 눌러 담기만 했던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 기분, 텅 비워진 느낌이랄까.

롱먼은 제법 대단한 역사를 가졌다. 1781년부터 1853년까지, 72년의 기나긴 작업을 거쳐 탄생, 깊이 5m, 폭 1m, 길이 2m에 달하는 윈난성에서 가장 길고 규모가 큰 석굴이다. 무엇보다 불교만이 아니라 도교의 건축예술이 혼합되었다는 게 아주 이색적이고 독창적이다.

나 역시 중국인들이 하는 것처럼 ‘건강히, 그리고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게 해달라고 '롱먼' 이라 쓰인 글자를 까치발을 하고 쓰다듬었다. 그리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나올 때, 뎬츠가 한눈에 들어오는 명당자리에서 잠시 멈춰 섰다.

고원의 명주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뎬츠. 하지만 지금의 뎬츠는 오염의 대명사로 악명 높다. 2000년대 들어서 중국 최대 화훼기지고 성장한 쿤밍. 업종 특성상 많은 물이 필요했고 뎬츠는 그 공급원이었다. 뿐 아니라 다른 한편에 자리한 비료, 시멘트, 화학, 금속 공장도 청정호수였던 뎬츠를 병들게 했다.

시야가 트이자 녹조로 신음하는 뎬츠가 보인다. 탁한 물빛을 하고 한치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물은 맴돌지언정 멈춰 서서는 안 되는 것인데, 우리네 삶도 같은 이치인데…….’

계단을 내려와 디시 롱먼 매표소 앞에 서니 한 무리 여행객을 태운 전통가가 멈춰 선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무리를 태우고 '슈웅' 바쁜 트림을 하고 이내 사라진다. 속도가 몸은 편하게 할지언정 가슴까지 흐뭇하게 하지는 못하리라. 나는 다시 멈추지 않고 길을 나섰다.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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