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 은행도, 산 기업도, 관리당국도 모두 "네탓" 타령만

입력 2010-10-18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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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보이지 않는 '키코 악몽'] <상> 지난 2년 무슨 일 있었나

은행과 중소기업들이 환위험 회피상품인 키코(KIKO, Knock-In Knock-Out) 사태를 둘러싸고 2008년부터 현재까지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그간 소송을 진행하면서 주춤했던 키코 사태는 금감원이 은행들을 불완전판매로 제재하고 10월 국정감사에서도 불거지면서 '뜨거운 감자'로 다시 부상했다.

기업들은 은행들이 불완전 판매를 일삼았다고 주장하는 반면,은행들은 기업들이 환차익 투기로 키코에 가입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또 국회에서는 금감원이 은행들의 키코 판매를 묵인했다며 해결책을 요구하고 있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수 없는 키코사태는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난 지금도 금융당국과 은행, 기업들 사이에서 끝없는 소모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 잘못은 '시장 참가자 모두' =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을 계기로 시작됐던 글로벌 금융위기는 은행과 중소기업들을 키코의 공포로 몰아넣었다. 전문가들은 키코사태의 책임이 시장 참가자 모두에게 있다고 지적했다.

한 민간경제연구소 관계자는 "당시 고환율정책을 펼친 정부, 환투기에 나선 기업, 이를 부추긴 은행, 늦장대응한 금감원 등이 모두 일정 부분 키코사태에 기여한 책임이 있다"고 언급했다.

정부는 2008년 당시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을 중심으로 대외 균형에 대한 강한 확신속에 고환율 정책을 실시했다.

2008년초 930원대 머물렀던 원달러 환율은 정부의 고환율 정책으로 그 해 9월 순식간에 1500원 선을 돌파했고, 과도하게 치솟은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쏟아부은 달러로 인해 외환보유액도 2000억달러 이하로 무너질 뻔 했다.

급격한 환율 상승은 키코에 가입한 중소기업들에게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 하지만 기업들도 외화매출액의 2배 가까운 규모로 오버헷지한 계약을 하는 등 환차익에 '베팅'했다. 이들은 키코를 통해 오히려 환차익을 볼 심산이었던 것이다.

예상되는 외화매출액의 범위 안에서 계약을 하면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은행에 되팔면 되지만 이 범위를 넘어선 계약은 기업들에게 더 많은 달러를 시장에서 2배나 비싼 가격에 사도록 만들었다.

이같은 리스크 구조를 간과하고 키코 상품을 판매한 은행들도 키코 사태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중소기업들의 손실은 은행의 부실자산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은행들의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거졌다.

금감원은 이같은 키코사태에 대해 피해사실이 알려진 뒤에 규모를 파악하는 등 늑장대응이라는 지적을 면하기 힘들었다. 특히 은행들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키코 영업을 벌였을 때도 제대로 감독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됐다.

◇ 키코 수혜는 누구? = 키코는 2008년 사태가 불거진 때부터 음모론이 제기됐다. 손실액이 약 2조4000억원으로 알려졌지만 키코로 이득을 본 이들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계약을 체결한 은행들도 중소기업의 부실로 인해 리스크 관리가 되지 않았고 중소기업들은 엄청난 환손실을 경험했다.

키코는 필연적으로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는 '제로섬' 성격을 가진 옵션 상품이다. 은행과 중소기업이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면 누군가는 2조4000억원을 챙겼다는 이야기이다. 2008년 당시 일부 국회의원들과 업계 관계자들은 외국계 자본이 이익을 취했다는 음모론에 가세했다.

음모론에 가세한 이들은 키코의 특징 중 하나를 지목한다. 키코는 은행이 시장위험을 통제할 수 있는 한도만 보유하고 통제 가능한 범위를 벗어난 나머지에 대해 모두 위험회피(헷지)를 한다.

통제 한도를 초과한 부분에 대한 위험회피는 키코 계약 이후 바로 국내외 금융사와 투자자들에게 되파는 백투백(Back to Back) 거래로 진행된다. 은행이 보유한 다른 파생상품과 키코를 묶어 국내외 파생상품시장에서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파는 방식이다.

해외에 모회사가 있는 외국계 은행들은 파생상품시장에 접근하기 쉽기 때문에 이같은 위험회피 거래로 수익을 벌었을 것이라는 게 음모론의 내용이었다.

하지만 키코 위험회피 거래는 금융위기를 일으켰던 모기지 거래와 유사하다. 키코 위험회피 거래도 모기지 거래처럼 파생상품시장에 내놓으면 여타 다른 파생상품과 섞여 누가 샀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은행들은 시장에서 환전이익만 받고 키코 위험회피 거래를 팔았다면 누군가가 사고팔았는지 그것이 키코인지 다른 파생상품인지 알 수 없다.

증권업계 관계자 중 한 명은 "파생상품은 키코를 비롯해 모두 시장에 내다팔면 그 후 누가 사고파는지 알 수 없게 된다"며 "시장 상황에 따라 그 파생상품이 '대박'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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