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황실은 막부 시대와 메이지 시대 그리고 제국주의 시대를 거쳐 오면서 왕실 권위에 있어 최고의 전성기와 추락을 경험하며 역사적으로 큰 변화를 겪어왔다.
일본 황실은 서양의 다른 입헌군주국들과 달리 그 역할이 극히 제한돼있으며 내각과 총리가 대부분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다. 황제로써 총리 임명과 후보자 임명 등을 할 수는 있지만 이 같은 권한 상실은 절대적인 왕권으로 한 시대의 화신으로 여겨졌던 메이지 시대와 큰 차이를 보인다.
6세기 막부 체제가 시작된 이후 일본 황실은 정치적 역할에 큰 통제를 받았고 이에 일본의 천황은 제한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소가(530~645), 후지와라(850~1070), 짧은 기간 영향력을 가졌던 다이라, 미나모토(1192~1333), 아시카가(1336~1565), 도쿠가와(1603~1867) 등의 막부, 즉 6개의 무사정권의 통제를 받아 왔다.
이들 막부 중 소가 막부는 일본 왕실을 위협하다 나카노에 황태자에 의해 일어난 645년 정변으로 멸문됐고 이후 간무와 사가 두 일왕이 절대왕권을 누리기도 했으나 후지와라 막부가 9세기 초 왕실의 외척이 돼 권력을 장악하면서 왕실의 권위는 다시 상실의 위기를 맞았다. 또 도쿠가와 막부는 권력을 이용해 1590년 반대파의 불만을 억제하고 명나라와 인도를 지배하겠다는 야심으로 조선을 침공,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이들 중 특히 미나모토 이후 모든 막부는 일본인들 사이에서 공식적으로 왕족이나 다름없이 인식되고 있다. 일본 황실은 그저 일본의 상징일 뿐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대표되는 에도막부를 지나 말부 말기 일본은 1854년 ‘미일 화친 조약’을 시작으로 문호를 개방, 쇄국체제를 풀게 된다.
이후 1866년에 즉위한 메이지 일왕은 막부를 크게 압박, 왕정 복고를 선언하게 된다. 메이지 일왕은 에도 막부가 위치한 에도를 도쿄로 바꾸고 도쿄의 고쿄로 천도했으며 한 대에 한 연호만 쓸 수 있는 일세일원제를 채택,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했다.
그 후 메이지 일왕은 신분제를 철폐, 왕족·다이묘·사무라이를 귀족층으로 통일해 사농공상의 신분층을 평민으로 삼는 신분개혁 단행했지만 여기다 서양문물로 유입된 민주주의 정치에 대한 욕구가 바람을 타면서 입헌정치 요구 움직임이 싹트기 시작한다. 결국 이토 히로부미를 필두로 한 무사들이 정부의 주도권을 장악, 대일본 제국 헌법(메이지 헌법)을 반포하면서 일본은 입헌국가로서의 초석을 다지게 된다.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보다 일찍 문호를 개방한 일본은 동아시아서의 지위 상승을 위해 1914년 발발한 1차 세계대전의 물결에 합류, 파시즘을 타고 일어난 제 2차 세계대전에서는 독일 이탈리아 등과 동맹을 형성하며 야심의 급물살을 타게 된다.
이 당시 일본 황실은 메이지 천황이 1912년 사망하고 요시히토가 천황이 됐다. 1901년 4월 29일 태어난 히로히토는 1926년 아버지 다이쇼 천황이 세상을 떠나자 25살의 나이로 제124대 천황에 즉위, 일본 제124대 천황에 올랐다. 연호는 쇼와다. 그가 바로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 이후 라디오 담화를 통해 ‘항복 선언’과 ‘인간 선언’을 하면서 자신의 신격(神格)을 부정했던 천황이다.
1945년 9월 2일 연합군 측과 천황 측이 도쿄만에서 공식적으로 항복 문서에 서명하면서 일본은 패전국으로 전락했고 동시에 일본 왕실도 전쟁 책임을 가진 전범 황실로 낙인찍히게 된다.
현재 일왕은 쇼와 천황의 장남인 아키히토로 1989년 부친이 사망하면서 일본 제 125대 천황으로 즉위했다. 연호는 헤이세이다.
그는 지난 2001년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선조인 간무 천황의 어머니 다카노노 니가사가 백제 무령왕릉의 자손이라는 ‘속일본기’의 내용을 언급하며 자신의 모계 혈통이 백제계라고 밝혔다. 아키히토 천황은 “간무천황(제50대 일왕)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돼 있다”며 “한국과의 깊은 연을 느낀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아키히토 일왕은 이 같은 공식적 발언 이전에 20년 전 자신의 모계 혈통을 인정하는 언급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일본의 아사히신문은 아키히토 일왕이 지난 1990 노태우 전 대통령의 방일 당시 “가계를 살펴보면 모계에 한국계 인물이 있는 듯하다”는 말을 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메이지 시대 이후 첫 평민출신으로 알려진 미치코 황후와 1959년 결혼했고 현재 장남인 나루히토 황태자와 차남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구로다 사야코 등 2남 1녀를 두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