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역전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았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뉴욕타임스(NYT), 영국 인디펜던스 등 주요 언론들은 논평을 통해 일제히 일본과 중국의 GDP 역전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지난 16일 발표된 4~6월 일본의 GDP 성장률은 전기 대비 0.1%, 연율로는 0.4%를 기록했다. GDP 규모는 1조2880억달러로 같은 기간 중국의 1조3390억달러보다 510억달러 가량 낮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중국의 연간 GDP가 일본을 웃돌 것으로 예상하고 일본이 미국에 이은 세계 2위 자리를 42년 만에 중국에 내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풍요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건전한 경제정책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WSJ는 ‘3등 일본(Japan as Number Three)’이라는 제하의 17일자 논평을 통해 이같이 평가하고 “일본의 20년간의 정체는 세계와 일본인에게 비극적인 상황”이라고 전했다.
NYT도 지난 15일 “이번 이정표는 중국의 상승이 사실임을 입증한 것”이라며 “세계는 중국을 새로운 경제 초강대국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디펜던트 역시 17일 “이변이 없는 한 2030년까지는 중국이 세계 최대 경제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들 전망이 맞다면 2010년은 중국 입장에서는 세계 2위 경제대국의 자리에 올라선 역사적인 해로 기록되는 반면 일본은 이 자리를 유지한 마지막 해가 되는 셈이다.
WSJ은 GDP에서 일본이 중국에 밀린 것과 관련해 몇 가지 요인을 지적했다.
WSJ은 첫 번째로 정부의 과도한 재정정책을 들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1984년 일본 정부의 세수는 GDP 대비 27%로 23개 회원국 가운데 21번째였고 세출은 GDP 대비 26%로 회원국 중 가장 낮았다. 그러나 현재 세출은 GDP 대비 40%에 가깝다.
WSJ은 이처럼 기형적인 예산이 1990년대 버블 붕괴 당시 정부가 도입한 케인즈식 정책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막대한 재정지출을 수반하는 케인즈식 정책은 일본의 부채를 GDP 대비 200%대로 밀어 올렸을 뿐 성장에는 거의 기여한 바가 없다는 설명이다.
또 '일본은 나라보다 개인이 부자'라는 인식은 잘못된 편견이라는 지적이다. 헤리티지 재단의 데렉 시저스는 “일본의 개인소득은 현재 세계 40위”라며 “일본인의 평균 소득은 미국에서 가장 빈곤한 미시시피 주의 주민보다 낮다”고 말했다.
WSJ는 두 번째 요인으로 국가의 의사결정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현재 일본은 심각한 저출산ㆍ고령화 현상으로 노동인구가 크게 감소하는 추세다.
고령인구가 늘면 리스크 회피 성향이 강해지게 마련이다. 미국, 호주와 달리 일본이 젊은 노동자의 공급원인 이민에 폐쇄적인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
WSJ는 이 같은 일본 정치 시스템이 지속적인 성장을 목표로 하는 경제정책으로 회귀할 의사가 없음을 나타내는 일례라고 꼬집었다.
2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고 폐허로 변한 일본을 강대국으로 올려놓은 헝그리 정신이 사라진 점도 일본 경제가 후퇴하는데 일조했다고 WSJ는 전했다.
한 50대 일본인 남성은 WSJ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은 기력을 잃었다”며 “옛날에는 열심히 하면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의지가 강했지만 지금은 이런 헝그리 정신이 사라졌다”고 한탄했다.
젊은이들 사이 경쟁심이 약해지고 있는 것과 오랜 경기 침체에 익숙해지면서 만연해있는 체념 무드도 일본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30대 일본인 남성은 “고용시장 침체와 인구 감소, 일본이 작은 섬나라임을 감안했을 때 일본은 비교적 오랫동안 높은 지위를 잘 유지해왔다고 할 수 있다”며 “일본 경제는 앞으로도 하향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일본이 이처럼 패배주의에 물들어가는 사이 역사도 다시 쓰여지고 있다.
WSJ는 1984년 OECD 회원국 가운데 21위였던 일본의 세수 순위를 빗대어 ‘21등 일본(Japan as number 21)’이라는 제하의 사설을 게재한데 이어 이번 중국과의 GDP 역전에 대해서는 ‘3등 일본(Japan as number three)’이라는 논평을 실었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학자인 에즈라 보겔 교수의 1979년도 저서 ‘1등 일본(Japan as number one)’에서 따온 것이다.
WSJ는 “중국의 약진이 세계 경제 번영에 기여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일본의 장기 불황이 세계에도 비극을 안긴 만큼 각국과의 공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미국에 대해서는 “일본 같은 정책 오류로 일본 같은 운명을 거치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는 지난 10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경기 회복세 둔화를 이유로 양적완화 재개를 결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