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주식시장과 '정보의 비대칭성'

입력 2010-01-18 11:28 수정 2010-01-18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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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 vs. 개미 싸움에서 증권회사가 '시장실패' 막아줘야

1970년대 이전까지 전통적인 경제학은 시장의 정보(information)가 공급자와 수요자간의 대칭적(symmetric)이라고 가정해 왔다. 이를 바탕으로 완전경쟁(perfect competition)이 가능해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시장의 균형을 이루게 한다고 설명해 왔다.

그러나 미국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 애컬로프(George Akerlof)는 지난 1970년 ‘레몬시장(Market for Lemons)’이란 논문을 통해 시장의 정보가 비대칭적(asymmetric)일 경우 시장의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market failure)고 발표해 새 경제학의 패러다임을 열었다.

애컬로프는 중고차시장을 ‘레몬시장’에 비유했다. ‘레몬’은 겉과 속이 다른 ‘결함 있는 나쁜 중고차’다.

중고차시장에 나온 중고차들에 대해 ‘차를 팔려고 하는 사람(공급자)’은 ‘차를 사려고 하는 사람(수요자)’ 보다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 실제로 차가 잘 달리는지, 크고 작은 사고는 없었는지(숨길 수만 있다면), 누가 어떻게 차를 함부로 몰고 다녔는지 등등을 공급자가 솔직히 말을 해주지 않으면 수요자들은 결코 알 수 없다.

이렇게 제품에 대한 정보가 비대칭적인 시장이라면 수요자들은 얼마를 지불하던지 간에 절대로 좋은 중고차를 살 수 가 없다.

이 같은 중고차시장에서 공인된, 믿을 수 있는 중고차딜러들이 존재한다면 시장이 균형을 이룰 수가 있다.

공급자들은 중고차딜러에게 차를 팔고, 중고차딜러는 차를 꼼꼼히 점검해 수리 하고, 일정기간 A/S도 보장하고, 마진을 얹어 적절한 가격에 수요자들에게 되팔면 된다. 그러면 공급자들은 중고차 값을 더 받기 위해 자신의 차에 대해 허풍을 떨거나 편법을 쓸 필요가 없고, 수요자들은 중고차를 고르면서 ‘레몬’이 아닌지 의심하는 기회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주식시장에 연초를 맞아 지난 한 해 동안 기업들의 영업실적을 발표하는 어닝시즌이 다가왔다.

1년 동안 어떻게 회사를 운영해 어떤 실적을 냈는지 주주들에게 자세히 밝히는 순간이다. 심판은 주가로 나타난다. 예상치 못한 기대 이상의 실적을 낸 기업들의 주가는 치솟을 것이지만 실적이 안 좋은 기업의 주가는 곤두박질 칠 것이고 일반 소액주주들을 대상으로 증자를 시도해도 외면당할 것이다.

연초 어닝시즌을 맞아 애컬로프의 ‘레몬시장’이 생각나는 이유는 과연 국내 주식시장의 정보가 일반 소액투자자(개미)들과 외국인투자자들(대부분이 대형 자산운용사나 펀드)이나 국내 기관투자가들사이에서 ‘대칭적’ 인가 하는 점이다.

기관과 개인은 주식투자 규모면에서는 물론 특정산업을 분석하고 기업의 실적을 추정하는 능력면에서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일을 보고 이 과일이 ‘레몬’인지 잘 익은 복숭아인지를 구분하는 감별력이 큰 차이가 난다는 말이다.

게다가 일부 기업들은 기관투자가들만을 초청해 정기적으로 기업설명회를 연다. 어떤 기업들은 뉴욕, 런던, 홍콩, 싱가폴 등지로 주요 해외 기관투자가(외국인투자자)들을 찾아다니면서 IR행사를 열기도 한다. 개미들이 기관투자가들과 대칭적인 정보를 공유하길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물론 주식 투자를 하는데 있어 현실적으로 기업의 실적분석 능력만 뛰어난다고 전부는 아니다. 글로벌 경기흐름도 파악할 줄 알아야 하고, 소문도 중요하고, 정보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고, 또 자금력도 풍부해야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다. 주식투자가 중고차시장에서 차를 고르는 것처럼 단순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 2009년 한 해 동안 증시에서 개인투자자들이 평균적으로 4.9%의 손실을 낸 반면 기관투자가들은 39.5%의 수익을 거뒀다(한국금융투자협회 자료)는 사실은 개인들이 비이성적이지 않았다면 주식투자와 관련된 정보싸움에서 기관에게 졌다고 해도 큰 무리는 아닐 듯 싶다.

주식시장에서는 중고차시장의 ‘시장 실패’를 막기 위해 ‘믿을 수 있는 중고차딜러’의 역할을 하는 곳이 증권회사다. 증권회사는 장세전망과 더불어 성장성, 수익성 등 기업의 올바른 정보를 개인투자자들에게 전달하고 개인투자자들은 그 자료를 믿고 자신의 판단에 따라 주식을 고른다. 증권회사는 투자자들의 주식매매 수수료를 얻는다.

연초 기업들의 실적이 발표되고 나면 지난 연말 기업실적 추정치를 발표했던 증권회사들에 대한 투자자들의 심판이 있게 된다. 족집게처럼 맞춘 증권회사도 있고, 대략 비슷하게 추정한 증권회사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얼토당토 않은 실적 예상치를 내놔 손실을 입혔다고 투자자들로부터 원성을 사는 증권회사도 나올 것이다.

지난 2008년에 비해 2009년의 개인투자자들의 손실 규모가 크게 작아졌다는 사실은 단순한 운이라기 보다는 개인들의 정보취득 면에서 증권회사들이 믿을 수 있는 역할을 더욱 충실히 한 결과는 아닌가 생각해 본다.

새해 2010년을 맞아 국내 증권회사들이 새로운 수익원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자산관리영업, 퇴직연금시장 선점, 해외시장 개척, 파생상품 개발, 온라인마케팅 강화 등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2년을 맞아 ‘죽기 아니면 살기’의 사활을 걸고 있다.

올해에는 국내 증권회사들이 외적인 성장도 중요하지만 더욱 더 올바르고 공평한 주식시장 질서가 확립되도록 일반 투자자들이 ‘레몬’을 고르지 않게 고객서비스를 강화하는 데도 신경을 써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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