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어린 날 내가 심은 나무

입력 2026-10-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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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사람뿐일까. 산과 들에 사는 짐승들도 그렇고, 풀도 나무도 그것이 태어나고 자라나는 환경이 중요하다. 초등학교 시절 한 선생님이 이렇게 말해 주었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가 스스로 자기 운명을 결정하지 못한 것이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자기가 태어날 자리, 환경에 대해서라는 것이었다. 알고 보면 너무도 당연하고도 평범한 말인데 처음 그 말을 들을 때는 어린 마음에 무척 새로운 발견처럼 들렸다.

나무든 풀이든 사람이든 생명이 있는 것이면 자라기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고 싶겠지만, 그게 태어나는 생명체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마 선생님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어린 제자들을 위해서 한 말이었을 것이다. 사람의 경우 태어나고 보니 대관령 아래 산골짜기의 가난한 집안일 수 있고, 어느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보니 커다란 바위틈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태어나는 생명은 환경의 선택권이 없다. 그러나 그런 바위틈에서도 비바람을 이겨내고 아름드리 소나무가 자란다. 선생님은 그 말을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지금도 내가 태어난 시골 마을 제방에 가면 아름드리 포플러 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아주 오래전 우리가 초등학생 시절 식목일 행사로 심은 나무였다. 그걸 심은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또 일하던 현직에서 물러나 퇴직했으니 그 나무의 나이도 예순 살이 되었을 것이다. 애초 그 제방은 냇물 옆의 작은 논둑이었다. 여름마다 개울이 넘쳐 어느 해인가 그곳에 제방을 쌓았다.

예전엔 마을마다 제방을 쌓을 때, 또 새롭게 길을 만들 때 품삯 대신 미국에서 구호양곡으로 보내온 밀가루를 주었다. 밀가루 포대에 태극기가 그려진 팔뚝과 별이 쉰 개나 된다는 성조기가 그려진 팔뚝이 악수하는 그림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이 양곡은 미국시민이 우방국 국민들에게 무상으로 원조하는 것으로 매매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이라고 씌어 있었다. 그걸 그냥 나눠준 것이 아니라 마을마다 길을 넓히고 제방을 쌓고 민둥산에 나무를 심는 품삯으로 주었다.

그 밀가루를 바탕으로 어느 해 봄부터 가을까지 어른들이 제방을 쌓고 아이들이 거기에 나무를 심었다. 얼핏 생각하기엔 물가에 서 있는 나무들일수록 영양분을 빨아들이는 데 어려움이 없어 꾀를 부려 산에 있는 나무보다 뿌리를 얕게 뻗고 말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다. 땅이 물렁한 물가에 서 있기 때문에 오히려 산에 있는 나무들보다 더 깊고 든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자기 몸을 지탱한다. 비바람에 늘 맥없이 뿌리째 뽑혀 나오는 건 산도 물가도 아닌 길가에 심은 가로수들이다.

그때 그 나무를 심은 우리는 이 나무들이 얼마나 크게 자랄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일찍 고향을 떠났던 사람도, 또 자주 고향에 들르는 사람도 매년 명절 고향을 방문할 때마다 하늘 높이 자란 나무를 보고 놀랐다. 자신들이 얼마나 오래도록 고향을 떠나 있었던가를, 그리고 그 시절로부터 또 얼마나 멀리 시간이 흘렀는가를.

그것이 어린아이들이 물가에 심은 손가락 같은 나무들이 어른이 된 그의 몸보다 몇 배 더 굵어지는 동안의 시간이다. 그 안에 세상도 참 많이 변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 물가에 선 나무일수록 뿌리를 깊게 내리고,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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