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광장-임채운의 경영직설] 실거주 정책이 불러온 ‘전세 유감’

입력 2026-10-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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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이사 고달퍼도 세금서 해방돼
장특공제 없어진 집주인 직접 거주
전세 씨 말리는 정책에 답답하기만

20년 이상 살던 집에서 이사가야 한다. 오랫동안 남의 집에 전세로 잘 살았다. 집 주인이 인심 좋은 사람은 아니다. 계약을 갱신할 때마다 시세에 맞춰 전세금을 올렸다. 처음에는 전세로 시작했는데 중간에 돈이 필요하다고 반전세로 돌려 매달 월세를 내고 있다. 2년마다 올라간 월세가 이제는 200만원이 넘어 상당한 부담이 된다. 그리 오래 살았고 월세를 한번도 미루지 않았지만 매번 따박따박 월세를 올리니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재계약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이번에도 올리면 나갈 거라고 강경하게 대응하리라 작정한다. 하지만 집 주인 여자는 만나자마자 먼저 선수를 친다. 재산세가 오른 데다 월세 받아 봐야 종합소득세와 건강보험료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한다. 그럼 그냥 덜컥 월세 올려 달라는 요구를 받아들이게 된다. 매달 나가는 월세가 아까워 다른 집으로 이사 가려고 했지만 복비와 이사비를 내면 절약하는 게 별로 없을 것 같아 눌러 살기로 했다.

2년마다 되풀이되는 과정을 10번 반복하니 20년이 후딱 가버렸다. 남의 집에 이렇게 오래 살 줄 몰랐다. 집 주인 남자는 개인병원을 하다 은퇴한 80대 의사로 인천시 부근의 요양병원에 주치의로 근무하고 있다. 요양병원은 밤중에도 수시로 환자를 봐야 하는 긴급한 상황이 발생해 병원 가까운 곳에 거주해야 한다. 그런 연유로 집 주인 부부는 병원 인근에 전세를 얻어 살며 자기 집을 전세로 놓게 된 것이다.

통상 전세 살면 몇 년에 한번씩 이사가야 한다. 새로 살 집을 찾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며 이삿짐 싸고 푸는 것도 고생이다. 게다가 은행에서 쿠팡에 이르기까지 주소를 변경해야 하는 곳도 많다. 전셋집을 옮겨 다닐 때야말로 집 없는 설음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사 다닐 필요없이 한 집에 오래 전세를 사니 그것처럼 편한 게 없다. 당연히 세금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취득세, 보유세, 양도세 등의 온갖 부동산세에서 해방된다. 정부가 종합부동산세 과표를 내린다거나 양도세를 올린다고 해도 마음이 평온하다. 주변의 친구들이 강남에 아파트를 갖고 있어 종부세를 몇천만원 냈다고 하소연하면 나도 종부세 좀 내보았으면 좋겠다는 농담으로 맞받아친다. 누가 양도세를 몇억원 내서 억울하다고 하면 그 이상으로 양도차익을 보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

증여나 상속에 대해서도 염려할 필요가 없다. 나이 들어 고가 아파트나 건물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은 어떤 방법으로 자녀에게 자산을 원활하게 줄 수 있느냐이다. 부동산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 공통적으로 불안과 초조에 사로잡혀 있다. 본인은 오래 살 것 같은데 자녀들이 빨리 넘겨 달라고 눈치를 준다고 한다. 한꺼번에 다 주었다가 늙어서 홀대받을 것을 걱정한다. 그러면서도 너무 오래 끌었다가 갑자기 사망하면 상속세로 거액을 나라에 납부할 것도 걱정한다. 너무 일찍 줘도 안되고 너무 늦게 줘도 안되니 걱정이 태산일 수밖에 없다.

전세로 사는 처음 몇 년동안에는 아파트를 사려고 노력해 보았다. 평균 한국인이면 거주건 재테크를 위해서건 집 한 채는 갖고 있는 게 상식이다. 강남을 위시해 위례나 마곡 등의 신도시에 아파트 청약을 여러번 신청해 보았지만 모두 떨어졌다. 인기 있는 곳은 경쟁률이 높아 가점이 특별공급이 아니면 일반분양은 어림도 없다. 프리미엄까지 주고 사기에는 너무 비싸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인기 없는 지역은 미분양이 많지만 나중에 안 팔릴까봐 섣불리 사기가 겁난다. 이것 저것 따지다 보니 결국은 때를 놓쳐 집을 사지 못했다. 그러고 전세로 오래 살다보니 큰 돈을 들여 집을 살 이유를 잃어 버렸다. 집 사람과 의논해 여기서 몇 년 더 살고 그 뒤에는 전세 보증금으로 실버 타운에 입주할 계획을 세웠다.

올해도 10월 중순 전세 재계약을 앞두고 집주인이 얼마나 올려 달라고 할지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을 깨고 자기네가 들어와 살아야 하니 이사를 나가라고 한다.

정부에서 비거주 주택에 대한 장기보유 특별공제 혜택을 없앴다고 해서 거주를 해야겠다고 한다. 집주인이 인천에 전세로 살고 있는 집도 소유주가 들어와 살아야 한다고 해서 비워주어야 하는 것이다. 자기네는 서울서 인천에 출퇴근하는 것이 불편해 병원 부근에 전세를 알아보았지만 갈 데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들어와야 하니 비워달라고 하였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꼴이다.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전세를 알아봤지만 씨가 말라 한 채도 없다.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이사가야 하고 전세금이 올라 지금 살고 있는 곳보다 더 많이 줘야 한다. 갑자기 몇억원의 전세금을 더 마련해야 하니 난감하다. 목돈은 주식과 펀드에 묶여 있는데 주가가 내려 팔기도 곤란하다. 20년 넘게 살아온 동네를 떠나 낯선 지역으로 더 많은 돈을 들여 가야 하니 서글프기만 하다.

그동안 남의 일처럼 여겨온 부동산세가 우리 같은 임차인에게도 불똥이 튀겼다. 실거주 요건을 강화해 초고가 주택의 투기를 잡는다고 하면서 왜 많은 국민이 연쇄적으로 이사 가게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얼마 전에는 집 팔아 주식 투자하라 해놓고 이제는 집을 사서 실거주하라 하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지 헷갈린다. 연초에 주식이 오를 때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FT(상장지수펀드)로 찬물 끼얹고 이제는 전셋집까지 걷어가버리니 어찌 살라는 건지 갑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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