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에 나비 필라이…“평화에는 정의 필요”

입력 2026-10-09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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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르트헤이트 맞서 만델라 변호…ICC·유엔 인권최고대표 거쳐
노벨위원회 “국제법 체계 압박받아…법치 강화해야 평화 가능”

▲2026 노벨평화상 수상자 나비 필라이. (연합뉴스)
▲2026 노벨평화상 수상자 나비 필라이. (연합뉴스)

2026년 노벨평화상은 국제법과 인권 수호에 힘써온 남아프리카공화국 법조인 나바네템 나비 필라이(85)에게 돌아갔다. 전쟁과 분쟁이 확산하고 국제법 체계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평화에는 정의가 필요하다”며 법에 기반한 국제질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AP통신에 따르면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9일(현지시간) 오슬로 노벨연구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필라이를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선정 이유로는 ‘평화와 국제법 증진을 위한 노력’을 꼽았다.

필라이는 남아공 더반의 인도계 타밀 가정에서 태어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 아래에서 법조인의 길을 걸었다. 넬슨 만델라를 비롯해 인종차별 정책에 맞선 인사들을 변호했고 이후 남아공 고등법원 판사와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CTR), 국제형사재판소(ICC) 재판관을 지냈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유엔 인권최고대표를 역임했다.

특히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에서는 강간과 성폭력도 집단학살에 해당할 수 있다는 국제법적 판단이 자리 잡는 데 기여했다. 노벨위원회는 필라이가 수십 년간 국가와 지도자에게 책임을 묻고 폭력과 분쟁 피해자들에게 희망을 줬다고 평가했다.

위원회는 올해 필라이를 선택하면서 국제법 체계가 처한 위기를 거듭 강조했다. 위원회는 이날 “힘이 권리를 앞설 때 안정과 신뢰, 평화로운 공존은 훼손된다”며 “평화에는 정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국내외 법치주의가 평화를 지키고 분쟁을 비폭력적으로 해결하는 토대라고 역설했다.

현장에서는 ‘왜 2026년에 국제법을 강조했느냐’는 질문도 나왔다. 이에 예르겐 바트네 프뤼드네스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국제법을 지탱하는 기관들이 엄청난 압박과 제재, 공격을 받고 있다”며 “세계가 오랜 기간 보지 못했던 수준의 많은 분쟁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제법 기관을 지원하고 강화하는 것이 더욱 평화로운 세계를 만드는 데 중요하다”고 밝혔다.

국제법이 현실의 전쟁과 분쟁을 막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한계를 인정했다. 프뤼드네스 위원장은 “국제법이 모든 분쟁을 예방할 수 있었던 적은 없다”면서도 “국제법이 기준을 세우고 법적 조치가 전쟁과 폭력을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더욱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한 초석은 국제법을 강화하는 데 있다”고 덧붙였다.

국제재판소나 관련 기관이 아닌 필라이 개인을 선정한 이유에 대해서는 수십 년간 이어진 활동을 꼽았다. 프뤼드네스 위원장은 “필라이가 넬슨 만델라와 반아파르트헤이트 인사들을 지원했던 시절부터 오늘날 주요 국제재판에 이르기까지 국제법 발전의 최전선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른 법관과 국제기관도 인정받을 자격이 있지만 올해는 가장 용기 있고 중요한 국제법 전문가 가운데 한 명인 필라이에게 주목했다는 것이다.

필라이는 최근까지 유엔 팔레스타인 점령지역 독립 국제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필라이가 이끈 조사위원회는 지난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집단학살을 저질렀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스라엘은 해당 조사 결과를 강하게 반박했다.

필라이의 수상으로 노벨평화상은 지난해 베네수엘라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에 이어 2년 연속 여성 수상자를 배출했다. 한국인 가운데서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남북 화해와 한국·동아시아의 민주주의 및 인권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올해 노벨평화상 후보에는 개인 208명과 단체 79곳 등 총 287명이 이름을 올렸다. 올해 노벨상 상금은 부문별 1200만 스웨덴크로나(약 16억원)로 지난해보다 100만 크로나(약 1억3500만원) 늘었다. 노벨재단은 노벨상 제정 125주년을 맞아 상금을 인상했다고 밝혔다. 시상식은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 오슬로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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