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기습적 발표로 수면 위로 떠오른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는 동맹의 정치적 논리가 어떻게 실리 없는 거대 청구서로 변모하는지 보여주는 전형이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6일 알래스카 LNG 개발 프로젝트에 대해 “그동안 사업성이 낮아 추진되지 못했지만 중동 전쟁 이후 전략적 가치가 생겼다”고 했다. 이 사업이 지닌 구조적 한계로 인해 시장에서 외면받았음을 우회적으로 인정하고, 정형화된 경제성 외에 에너지 안보라는 새로운 변수가 생겼음을 뜻한다.
정부가 뒤늦게 중동 정세 불안 등에 따른 안보적 전략적 가치를 언급하며 진화에 나섰으나, 그 이면을 들추면 참담한 실상이 드러난다. 미 연방정부의 보증은 턱없이 부족한 반면, 수십조원의 천문학적 투자 리스크와 매몰 비용의 위험은 고스란히 우리 기업들의 몫으로 남겨진다. 구속력 있는 장기 구매자조차 없는 경제성 제로의 사업을 정치적 이벤트와 대외 통상 압박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인다면, 그것은 투자가 아니라 강요에 가깝다. 김정관 장관이 거듭 강조한 상업적 합리성이야말로 이 위험천만한 외교적 압박 속에서 우리가 쥐어야 할 유일한 방패다. 동맹의 정치적 수사만 믿고 상업적 합리성을 외면한다면 회복하기 힘든 재무적 청구서로 돌아올 뿐이다.
호남 반도체 투자를 둘러싼 정부와 기업 간의 엇갈린 소통은 또 다른 차원의 ‘정치적 과속’을 고발한다.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거창한 정무적 구호 아래 정부는 후보지를 제안했고 최종 결정은 기업이 내렸다고 해명하지만, 현장의 현실과 기업들의 속내는 딴판이다. 막대한 전력과 용수 등 팹 가동을 위한 필수 인프라의 현실적 한계가 지적되는 상황에서, 톱다운(Top-down) 식의 일방적 드라이브는 정책 불확실성만 키우고 있다. 정부의 해명과 기업의 입장이 엇갈릴 때, 그 혼란의 대가는 고스란히 국가 첨단산업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
거센 통상 압박과 지역 균형 발전이란 대의명분 아래 추진되는 초대형 산업 프로젝트들이 치명적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있다. 철저한 경제적 타당성 검증을 건너뛴 정무적 과속이 기업과 국가 경제에 무거운 리스크로 다가오는 형국이다. 알래스카의 설원 위에서든 호남의 산단 부지 위에서든 교훈은 명확하다. 철저한 데이터와 실현 가능성이라는 바닥 다지기가 선행되지 않은 정무적 구호는 환상에 불과하다. 냉정한 손익 계산서와 상생의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리스크를 잠재우는 유일한 해법이다.
정치는 명분을 원하고, 경제는 실리를 먹고 산다. 국가의 미래를 설계함에 있어 외교적 전략이나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대의명분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문제는 그 명분이 철저한 데이터와 시장의 논리, 즉 ‘상업성과 실현 가능성’이라는 바닥 다지기를 건너뛴 채 오직 정무적 수사만으로 추진될 때 터져 나온다는 점이다.
알래스카의 거친 설원 위에서든, 전력·용수 인프라의 한계를 마주한 호남의 첨단 산단 부지 위에서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원칙은 단 하나다. 정치가 경제를 재단하려 들수록 시장은 왜곡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기업의 재무적 부실과 국가 첨단산업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 환상을 걷어내고 냉정한 손익 계산서와 상생의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거센 통상 압박과 산업 대전환의 파고 속에서 대한민국 경제가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다. ac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