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대 중반, 미국과 일본의 그 ‘소수사례’를 모방하여 한국 아이돌 시스템이 등장했다. 기획사의 콘셉트와 트레이닝 시스템에 의해 스타를 만드는 이 시도는 H.O.T.를 탄생시켰고 한국의 10대 문화를 일거에 바꿔 놓았다. 한국 음악 시장이 아이돌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산업계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 10대 초반의 아이들을 시스템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려 놓는 것. 이 시도의 첫 성공 사례는 보아였다. 초등학교 때 SM에 캐스팅된 보아는 10대 중반의 나이에 데뷔했다. 한국 대중음악계의 오랜 숙원이던 일본 진출에 성공, ‘아시아의 별’이 됐다. 이후, 스타를 꿈꾸는 어린 아이들이 기획사의 문을 두드렸고, 더 빨리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다.
어느 기획사에나 중고등학생 연습생들이 땀을 흘린다. 정식으로 연습생 계약을 맺으면 암암리에 학교 수업은 열외가 된다. 오직 데뷔를 위해 모든 걸 바친다. 어디선가 본 것 같지 않은가? 한국의 체육 시스템과 같다. 재능이 있는 체육 유망주가 국가 대표 상비군으로 뽑히면 선수촌에 입소해서 하루 종일 체육 훈련을 받고, 프로 리그가 없는 비인기 종목 선수들은 실업팀이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스포츠 팀에서 체육 엘리트로 활동하는 것 말이다. 국제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는 게 곧 국위선양이며 대중의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것이라 믿었던, 정책에서 나온 시스템이다.
이런 엘리트 체육 정책이 구 공산권 국가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국제 대회 성과로 이어졌듯, 같은 길을 따라온 아이돌 시스템 또한 한국을 넘어 세계로 진출했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를 시작으로, 일본을 거쳐 유럽, 그리고 이제는 대중음악 시장의 에베레스트인 미국에서도 정상에 오르는 게 빅 이슈가 아닐 정도가 됐으니 말이다. 파격적 속도다. 이는 산업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그 성과의 이면에는 ‘성적’에 집중하는 무의식이 있다. 성과우선주의가 문화에 그대로 이식된 셈이다.
K팝이 세계음악시장의 한 축이 되면서, 빌보드에서 보지 못했던, 미국 시장에 존재하지 않았던 무엇이 있다. 팬덤의 스트리밍 또는 다운로드 ‘총공’이다. 팬들이 뭉쳐 스트리밍과 다운로드 수치를 올리는 이런 행동은, 당연히 한국에서 시작됐다. 다른 나라보다 빨리 시장이 스트리밍으로 전환됐다는 환경적 요인과 좋아하는 가수의 차트 성적에 대리만족을 느끼는 심리적 공감의 결과다. K팝 시스템이 태릉 선수촌의 그것을 닮았듯, K팝 스타를 소비하는 무의식 또한 엘리트 체육에 투사되는 국민적 정서를 따라가고 있다. ‘K’의 연결고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