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장님, 우리 둘째예요. 원장님이 받아주셨던 그 아이예요.”
순간,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온 소년의 모습 위로 우렁찬 울음으로 세상과 처음 만났던 그날의 기억이 겹쳐졌다. 그때의 아기는 어느새 더벅머리 총각이 되어 내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요리사가 되겠다며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멋진 생각이에요.”
나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그의 선택을 응원해 주었다. 그 당시도 사람을 따뜻하게 하는 특별한 기운이 느껴졌다. 자신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길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이 대견했다. 그의 어머니는 1988년부터 나의 진료실을 찾아왔다. 돌이켜보면 그 긴 세월 동안 진료실은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공간만은 아니었다. 한 생명이 세상에 첫울음을 터뜨리던 순간부터, 그 아이가 자라 자신의 길을 선택한 청년을 지지하기까지 진료실에서 시간은 그렇게, 조용히 이어지고 있었다.
어느 가을날 사랑스러운 그녀가 임신을 준비하기 위해 진료실로 들어왔다. 보건소에서 받은 산전 혈액검사에는 특별한 이상이 없었고, 나는 몇 가지 필요한 검사를 추가로 권했다.
그때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보호자도 같이 상담받아도 될까요?”
잠시 후,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한 청년이 들어와 인사를 건넸다.
“원장님, 저 이○○ 씨 둘째 아들입니다.”
순간, 머릿속에 요리사가 되겠다며 환하게 웃던, 더벅머리였던 한 소년의 얼굴이 보름달처럼 두둥실 떠올랐다. 그런데 눈앞의 청년은 세련된 차림에 단정한 태도로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제 아내입니다. 원장님께 진찰받게 하고 싶어서 일부러 찾아왔습니다.”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처럼 여기던 그 소년은 대학에 진학하면서 진로도 바꾸었다고 했다. 그리고 태어난 지 35년이 지난 지금, 그는 한 사람의 남편이 되어 아내의 손을 잡고 다시 내 앞에 앉아 있었다. 수십 년의 시간이, 이렇게 한순간이라니. 진료실에서 그 찰나가 세대를 건너 이렇게 다시 이어지고 있다.
오랜만에 다시 방문한 그녀는 의자에 앉자마자 말했다.
“원장님, 허리가 너무 아프네요. 손녀가 예쁘긴 한데… 돌보기가 매우 힘듭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며느리가 처음 이곳을 찾았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그 사이 아이가 태어나 어느덧 첫돌을 맞았다는 것이다.
“벌써 돌이에요?”
“우리가 나이 들어서, 입 찢어지게 웃을 일이 뭐 있겠어요. 그래도 손녀 보니 좋지요?”
내 말에 그녀는 피곤함도 잊은 듯 얼굴에 함박꽃을 피웠다. 손주가 없는 나는 그녀를 따라 웃으며 더 크게 말했다.
“정말 부럽습니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 ‘마을’ 속에는, 이렇게 다시 이어지는 작은 진료실의 시간도 포함되어 있을지 모른다. 임선영 임선영산부인과의원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