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드라마를 두고 흔히 나오는 말입니다. 수십~수백 회에 이르는 분량에 타임슬립은 기본, 초능력까지 갖추는 등 과장된 캐릭터 설정, 예측불허한 전개까지 떠올리면 선뜻 재생 버튼을 누르기 쉽지 않은 드라마인 것도 사실인데요. 그런데 요즘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톱 10 리스트에 이 중국 드라마가 이름을 올려 눈길을 끕니다.
'조춘청랑'은 14일 기준 '오늘 대한민국의 톱 10 시리즈' 5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귀여운 '고양이 경례'로 국내에서도 팬덤을 형성한 배우 전미희의 주연작, 중국 로맨스 사극 '옥을 찾아서'도 국내 인기 목록에 이름을 올린 바 있죠. 마니아가 별도 플랫폼을 찾아 감성하던 중국 작품이 이제는 익숙한 글로벌 OTT 플랫폼에서 한국 드라마 옆에 놓인 모습인데요.
스마트폰 화면에선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중국 숏드라마 앱이 신규 설치 순위 상위권에 오르고, 한국 제작사는 중국 숏드라마를 다시 만들어 선보이는 중인데요. K-콘텐츠가 경계해야 할 중국 드라마의 역습이 시작된 걸까요?

'조춘청랑'은 광고회사 신입사원과 까다로운 상사 사이에 싹트는 비밀 연애를 그린 24부작 중국 드라마입니다. 사극이나 무협물이 아닌 오피스 로맨스가 중국을 넘어 시청자를 모은 건데요. 지난달 26일 공개된 이 작품은 첫 집계 주인 지난달 24~30일 넷플릭스 글로벌 비영어 시리즈에서 2위에 올랐습니다.
넷플릭스 공식 집계 사이트 투둠에 따르면 9월 첫째 주(8월 31일∼9월 6일) 주간 차트에서 '조춘청랑'은 국내 톱 10에 처음 진입하면서 일간 순위에서도 상승세를 보였습니다. 13일 '오늘 대한민국의 톱 10 시리즈'에서 6위를 차지하더니 이튿날인 오늘(14일)은 한 단계 순위를 끌어올려 5위에 자리했죠.
이 성과가 갑자기 나온 건 아닙니다. 중국 OTT 유쿠(Youku)가 제작한 로맨스 드라마 '투투장부주(Hidden Love)'는 2023년 공개 이후 여러 지역의 넷플릭스 주간 순위에 누적 53주 이름을 올렸습니다. 지난해 공개된 '난홍(The First Frost)'도 넷플릭스 글로벌 일간 순위 6위까지 올랐죠.
중국 드라마의 약진이 우연은 아닙니다. 세 작품 모두 공감이 어렵지 않은 로맨스를 중심에 둔 데다, 글로벌 OTT인 넷플릭스에서도 볼 수 있는데요. 특히 유쿠는 '조춘청랑'을 중국과 넷플릭스에 같은 날 공개하면서 해외 시청자가 중국 플랫폼을 따로 찾아가거나 공개를 기다리지 않아도 신작을 접할 수 있게 했죠.
언어의 문턱을 낮추려는 움직임도 확인됩니다. 또 다른 플랫폼 아이치이(iQIYI)는 해외 서비스에 13개 언어 자막과 더빙을 제공하고 있는데요. 아이치이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태국에서는 태국어로 더빙한 중국 드라마 7편이 자사 서비스의 현지 인기 톱 10에 들었습니다. 자막·더빙에 투자하고 지역별로 작품을 유통하면서 중국 드라마를 접하기까지 필요한 수고를 줄인 셈입니다.
세계 각국에서 공감을 자아낼 수 있는 로맨스 작품이 해외 시청층을 확보하고,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글로벌 OTT에 빠르게 올라오며, 현지 언어로 감상할 길까지 넓어지면서 중국 드라마가 적지 않은 시청자들의 눈길을 받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는데요. 장편 드라마 외에 주목할 짧은 드라마도 있습니다.

넷플릭스 인기 목록에서 중국 드라마를 발견했다면, SNS에서는 중국판 숏드라마를 마주칠 가능성이 큽니다. 주인공이 배신당하거나 숨겨온 정체가 드러나려는 순간 광고 영상이 끊기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본편에서 보라는 식인데요.
국내 앱 설치 순위에도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달 엔터테인먼트 앱 신규 설치 1~3위는 모두 중국계 숏드라마 플랫폼이 차지했습니다. 1위는 드라마웨이브(84만 건), 2위 넷쇼트(80만 건), 3위 드라마박스(74만 건)로 나타났죠. 국내 OTT 신규 설치 건수와 약 20만 건 벌어진 모습입니다. 티빙은 57만 건으로 5위, 쿠팡플레이는 54만 건으로 6위를 차지했죠. 특히 5월 각각 34만 건, 32만 건이었던 넷쇼트와 드라마박스의 신규 설치는 3개월 만에 2배 이상 늘었죠.
숏드라마가 시청자를 붙잡는 방식은 긴 드라마와 다릅니다. 넷쇼트가 소개하는 회차 길이는 1~3분. 로맨스나 복수극의 갈등을 초반부터 펼치고, 다음 장면이 궁금한 지점에서 엔딩 화면을 내보냅니다.
이때 결제가 등장합니다. 넷쇼트는 많은 작품의 앞부분을 무료로 공개하고 뒷부분은 광고를 보거나 코인을 사용하고 구독하는 등의 방법으로 감상할 수 있다고 안내하는데요. 처음부터 유료 구독을 결정할 필요가 없어 시작은 쉽습니다. 대신 이야기에 몰입한 뒤에는 다음 회차를 보기 위해 광고를 반복해서 보거나 돈을 쓸지 선택해야 하죠.
이 방식은 실로 세계 시장에서도 규모를 키우고 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센서타워에 따르면 올 1분기 세계 숏드라마 앱 다운로드는 8억5000만 건을 넘어 전년 동기보다 140% 증가했는데요. 같은 기간 앱 내 구매 매출은 20% 늘어난 약 7억5000만달러(약 1조200억원)로 나타났죠.

중국 숏드라마의 영향은 국내 제작 현장에서도 포착됩니다. KT스튜디오지니가 1월 드라마박스에 공개한 '청소부의 두 번째 결혼'은 국내에서도 인기를 끈 중국 숏드라마 '50세는 아닙니다'를 한국 배우 박한별·고주원과 함께 다시 만든 작품인데요. 원작이 퇴임 후 환경미화원으로 살아가는 '대하국 국사'를 내세웠다면, 한국판은 신분을 숨긴 바이오 기업 창립자를 주인공으로 합니다. 정체가 밝혀지며 상황이 반전되는 재미는 살리고, 인물의 직업과 배경은 한국 시청자에게 익숙하게 바꾼 모습이죠.
KT스튜디오지니에 따르면 '청소부의 두 번째 결혼'은 공개 직후 드라마박스 인기 순위 1위에 올랐습니다. 중국계 플랫폼에서 유통하던 이야기를 한국 제작사가 현지화해 다시 같은 플랫폼에 공급한 사례입니다. 작품을 들여와 자막을 더해 보여주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거죠.
협업도 한 작품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KT스튜디오지니는 지난해 드라마박스와 숏드라마 극본 공모전을 열었고, 드라마박스를 포함한 해외 숏드라마 플랫폼들과 유통망을 구축했습니다. 한국 제작사가 중국계 플랫폼의 인기 원작을 활용하는 동시에 직접 발굴한 이야기를 해외 시청자에게 선보일 길까지 적극적으로 마련하고 있는 모습이죠.
중국 드라마의 약진으로 국내 콘텐츠 시장의 경쟁 구도가 달라졌다고 확언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중국 드라마의 성적을 이례적인 일로만 치부할 순 없는 것도 사실인데요. 해외 시청자가 중국 작품을 꾸준히 선택하고 국내 제작사와 중국계 플랫폼의 협업이 늘어난다면, OTT의 작품 확보와 제작 투자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중국 드라마의 약진이 아직 국내 제작 현장에서 경쟁 구도의 변화로 받아들여지는 단계는 아니"라면서도 "다만 최근 중국 드라마가 특히 큰 인기를 끄는 동남아시아 시장이 한국 드라마가 글로벌 시청자를 만나온 주무대인 만큼 K-콘텐츠 제작과 유통에 있어 던지는 시사점은 이미 충분하다"고 전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