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원자력 협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고 2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미국 기업의 사우디 원전 시장 진출 길을 열면서 동시에 현지 우라늄 농축 가능성까지 열어둔 협정이라는 점에서 핵확산 우려를 둘러싼 논쟁이 불거질 전망이다.
WSJ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전날 사우디와 체결한 원자력 협정을 의회에 제출했다. 양국이 지난달 체결한 협정은 30년간 유지되며, 미국 기업들이 사우디 원자력 인프라 건설에서 핵심 역할을 맡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쟁점은 우라늄 농축이다. 협정에 따르면 양국은 미국 기업이 사우디에 우라늄 농축시설을 건설하는 것이 상업적으로 타당한지 2년에 걸쳐 공동 연구하기로 했다. 필요성이 인정되면 미국 기업이 시설을 건설하되 민감한 핵기술은 사우디 측에 이전하지 않는 방식이다.
사우디는 자국 우라늄 매장량을 활용해 민간 원자력 산업을 육성하고 국내 발전에 쓰이는 석유를 줄이면 원유 수출을 늘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자국 기업에 사우디 원자력 인프라 개발의 핵심 역할을 맡겨 외국 경쟁업체를 배제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사우디 내 우라늄 농축 자체가 중동의 핵확산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안드레아 스트리커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연구원은 “미국이 운영하는 시설이라도 사우디 영토에서 우라늄 농축을 허용하는 협정에 의회가 반대해야 한다”며 미국이 수십 년간 추진해온 핵 비확산 정책을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 의회에서 협정을 저지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 원자력법에 따라 외국과의 원자력협정은 의회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의회가 협정을 막으려면 양원 합동결의가 필요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이에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양원 각각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이를 무력화해야 한다.
진짜 변수는 이스라엘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정이 이미 협상·서명된 뒤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하고 ‘아브라함 협정’에 참여해야 원자력 협정을 이행할 수 있다는 조건을 추가했다. 아브라함 협정은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중재로 2020년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바레인 등이 외교 관계를 정상화한 협정이다. 미 행정부 관계자는 WSJ에 “사우디가 아브라함 협정에 가입해야 협정이 진전될 수 있다는 대통령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사우디는 조 바이든 행정부 당시 미국과의 방위협정과 민간 원자력 협력을 대가로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추진했다. 하지만 2023년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과 이후 가자전쟁이 이어지면서 관계 정상화 논의에서 한발 물러섰다. 이에 따라 의회의 핵확산 우려를 넘어 사우디가 이스라엘과의 수교 조건을 받아들이느냐가 협정의 실제 이행을 좌우할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