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다행히 찬사입니다. ‘저혈압 치료제’로 불리는 프로야구는 착하디착한 이조차 온갖 욕을 내뱉게 하는 곳으로 악명이 자자하죠.
하지만 그 격한 곳이라도 한 번씩은 효도하는 맘으로 ‘긍정 가득한’ 욕을 내뱉게 해주는데요. 요즘 그 효도 덕분에 정신 못 차리는(P) 팬들의 비명으로 그라운드가 뜨겁습니다.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채워질 때까지 팬을 놓아주지 않는, 야구판 ‘희망 고문’의 주문이죠.

25일 광주 KIA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26 신한 SOL KBO리그 KIA 타이거즈와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 중 마지막 이닝. 롯데 마무리 김원중이 9회말 첫 타자를 잡아냈을 때까지만 해도 승리는 롯데 쪽으로 기우는 듯했는데요.
9회말 KIA가 4-5로 뒤진 상황. 1사 후 나성범이 좌전 안타로 불씨를 살렸지만, 대타 이창진이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습니다. 이제 롯데가 잡아야 할 아웃카운트는 하나죠.
그러나 김호령이 3유간을 꿰뚫는 안타를 때렸고, 김태군이 볼넷을 골라 베이스를 가득 채웠습니다. 안타면 동점, 장타면 역전. KIA는 변우혁의 타석에 대타 이호연을 내보냈는데요.
이호연은 김원중의 초구 포크볼에 헛스윙했지만, 직구와 포크볼을 잇달아 골라내며 볼카운트를 2볼 1스트라이크로 만들었습니다. 이어진 4구째 시속 133㎞ 포크볼이 가운데로 몰리자 거침없이 방망이를 돌렸는데요. 높이 뜬 타구는 오른쪽 담장을 훌쩍 넘었죠. 4-5 점수가 순식간에 8-5로 바뀌는 끝내기 만루홈런이었습니다.
KIA는 앞서 2-0으로 앞서다 5회에만 5점을 내주며 역전당했는데요. 롯데 손성빈의 2타점 적시타에 이어 나승엽의 2타점 2루타, 빅터 레이예스의 적시 2루타가 연달아 터졌죠. KIA가 6회 하주석의 투런홈런으로 4-5까지 추격했지만 8회까지 점수는 그대로였습니다. 남은 기회는 단 한 번뿐이었고, 이호연이 그 한 번을 잡았습니다.
개인 첫 대타 홈런과 첫 만루홈런, 첫 끝내기 홈런이 한 타석에서 동시에 나왔는데요. 2018년 롯데에서 데뷔해 kt 위즈를 거쳐 지난해 KIA에 합류한 이호연이 친정 팀 마무리를 상대로 만든 기록이었습니다. 9회말 2사 만루에서 대타가 역전 끝내기 만루홈런을 친 것은 KBO리그 최초죠.

이호연의 한 방은 승패만 뒤집은 게 아니었는데요. 불과 이틀 전 끝내기 만루홈런에 무너졌던 KIA를 이번에는 그 홈런의 주인공으로 바꿔놨습니다.
23일 키움 히어로즈전에서 KIA는 7-2로 앞선 채 9회말을 맞았는데요. 선발 제임스 네일이 6이닝 2실점으로 호투한 데다 8회 석 점을 보탠 터라 승리는 굳어진 듯했죠.
하지만 키움은 권혁빈과 서건창, 추재현의 안타로 1사 만루를 만들었습니다. KIA가 이태양 대신 이의리를 투입했지만 맷 데이비슨이 2타점 적시타를 때렸고, 안치홍의 볼넷으로 다시 만루가 됐는데요. 이의리가 대타 여동욱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면서 이제 남은 아웃카운트는 하나였습니다.
타석에는 9회초 대수비로 들어온 백업 포수 김재현(키움)이 섰는데요. 시즌 타율 0.100, 통산 홈런 7개였던 김재현은 2볼 2스트라이크에서 이의리의 7구째 시속 155㎞ 직구를 잡아당겼습니다. 타구가 왼쪽 담장을 넘어가며 7-4는 8-7로 뒤집혔죠. 1551일 만에 나온 홈런이 개인 첫 만루홈런이자 첫 끝내기 홈런이 됐죠.
키움은 9회에만 6점을 뽑아 경기를 끝냈는데요. 5월 10일 안치홍에 이어 한 시즌에 두 차례 끝내기 만루홈런을 기록한 KBO 최초의 팀도 됐죠. 이 탄식이 단 이틀 뒤에 환호로 바뀐 건데요. 역전 끝내기 만루홈런을 맞은 팀이 바로 다음 경기에서 같은 홈런으로 승리한 첫 사례. KIA의 표정은 단 48시간 만에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현실적이지 않은 경기, 비단 ‘끝내기 만루 홈런’만 있는 건 아닌데요. 사직에서는 8점 차가 한 이닝 만에 사라졌죠.

18일 키움전에서 롯데는 7회초까지 0-8로 끌려갔습니다. 키움 선발 전준표에게 6이닝 동안 3안타로 묶인 데다 남은 아웃카운트는 9개. 사실상 승부가 기운 듯했는데요.
하지만 7회말 전민재의 볼넷과 상대 실책, 손성빈의 볼넷으로 무사 만루가 만들어졌습니다. 황성빈이 2타점 2루타로 포문을 열고 빅터 레이예스가 적시타를 보탰는데요. 이어 한동희(롯데)가 비거리 130m짜리 만루홈런을 터뜨리면서 0-8은 순식간에 7-8이 됐죠.
심상치 않은 분위기 속 키움은 고승민과 윤동희를 잡아내며 가까스로 2사까지 갔는데요. 그러나 전민재와 장두성의 연속 안타에 이어 손성빈의 2타점 2루타가 터지며 롯데가 9-8로 경기를 뒤집었죠. 나승엽과 레이예스, 한동희의 적시타까지 이어지면서 점수는 13-8로 벌어졌는데요. 타순이 두 바퀴를 돌아 윤동희가 같은 이닝의 두 번째와 세 번째 아웃을 모두 기록할 정도였습니다.
롯데는 7회에만 18타석에서 11안타와 볼넷 3개를 묶어 13점을 쓸어 담았는데요. 구단 한 이닝 최다 득점이자 KBO리그 역대 공동 2위 기록입니다. 8회에는 손성빈의 투런홈런까지 더해 15-10으로 승리했죠.

사흘 뒤 대전에서는 한 점 더 벌어진 9점 차마저 뒤집혔습니다. 21일 LG 트윈스전에서 한화 이글스 선발 브루스 짐머맨은 1회 아웃카운트 하나만 잡고 7점을 내줬는데요. LG가 3회 두 점을 더하면서 점수는 0-9. 6연패 중이던 한화가 또 무너지는 듯했죠. 추격은 4회말 허인서의 2타점 2루타로 시작됐습니다. 한화는 5회 3점을 보탠 뒤 6회 김태연의 홈런과 강백호의 2타점 적시타로 8-11까지 따라붙었는데요. 7회에도 석 점을 뽑아 마침내 11-11 동점을 이뤄냈습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죠. 8회말 2사 1·3루에서 김태연이 중전 적시타를 때려 처음으로 경기를 뒤집었습니다. 문현빈의 2타점 2루타와 한지윤의 적시타까지 이어지며 점수는 15-11. 한화는 4회부터 2점, 3점, 3점, 3점, 4점을 올리는 다섯 이닝 연속 득점으로 9점 차를 지워버렸는데요.
장단 20안타를 터뜨린 한화는 1번부터 7번 타자까지 모두 멀티히트와 타점을 기록했죠. 9점 차 역전승은 KBO리그 역대 공동 2위이며, 9점 이상 뒤진 경기를 뒤집은 것은 역대 다섯 번째인데요. 한화는 믿기 힘든 역전극과 함께 6연패에서도 탈출했습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점수. 롯데는 0-8로 뒤지던 경기를 15-10으로 끝냈고 한화는 0-9를 15-11로 뒤집었습니다. 키움은 23일 2-7로 뒤진 9회말에 6점을 몰아쳐 8-7로 이겼고, KIA는 25일 마지막 아웃카운트 하나를 남겨두고 4-5를 8-5로 바꿔놓았죠.
승리의 무게도 가볍지 않습니다. 25일 현재 KIA는 61승2무50패로 4위를 지키며 3위 LG를 0.5경기 차로 추격하고 있는데요. 롯데와 한화는 5위와 격차가 남아 있지만, 가을야구 가능성을 이어가기 위해 연승이 필요한 처지죠. 포스트시즌 탈락이 확정된 키움도 갈 길 바쁜 KIA를 상대로 위닝시리즈를 가져가며 순위 경쟁의 변수가 됐습니다. 가을야구를 향한 계산은 제각각이지만, 순위표는 아직 어느 팀의 결말도 쉽게 허락하지 않고 있는데요.
여기에 25일부터 확대 엔트리가 시행됐습니다. 올스타 휴식기 이후 적용됐던 30명 등록·28명 출장 체제가 최대 34명 등록·32명 출장으로 넓어졌는데요. 시행 첫날 10개 구단은 총 38명을 1군에 추가 등록했습니다. 대타와 대주자, 수비 교체는 물론 불펜 운용에도 선택지가 늘어났습니다.
KIA의 끝내기 승리에서도 확대 엔트리의 지원군이 보였는데요. 이날 등록된 박상준은 선발로 출전해 6회 안타를 친 뒤 하주석의 투런홈런 때 홈을 밟았죠. 함께 등록된 변우혁의 타순에 9회 대타 이호연이 들어가 경기를 끝냈는데요. 앞선 역전극을 확대 엔트리의 효과로 볼 수는 없지만, 벤치의 선택지가 넓어진 만큼 남은 경기에서는 또 다른 반전 요소가 될 수 있죠.

KBO는 같은 날 미편성 45경기와 우천·폭염 등으로 순연된 경기 60경기를 합친 총 105경기의 잔여 일정도 발표했습니다. 현재 일정은 10월 7일까지 편성됐는데요. 9월 29일 이후에는 조건에 따라 더블헤더가 열릴 수 있고, 취소 경기를 다시 배치할 경우 최대 9연전도 가능합니다. 아시안게임 기간에는 더블헤더를 편성하지 않지만, 대표선수 차출에 따른 전력 공백은 피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확대 엔트리는 지친 선수들에게 숨을 돌릴 여유를 주지만 감독에게는 더 많은 선택을 요구합니다. 누구를 대타로 내보낼지, 어느 투수에게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맡길지에 따라 한 시즌의 순위가 달라질 수 있는데요. 최근 네 경기에서도 승리를 눈앞에 둔 팀들은 모두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채우지 못해 무너졌습니다.
‘도파민 경기’가 모두에게 짜릿한 것은 아니죠. 한쪽에는 오래 회자될 기적이지만, 다른 쪽에는 다 잡은 승리를 놓친 악몽 그 자체인데요. 팬들이 바라는 건 하나겠죠. 다음 역전극에서는 응원팀이 무너지는 쪽이 아니라 끝내 뒤집는 쪽에 서 있길 바랄 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