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메인무대보다 사람을 남겼다”…17년 만에 이름 바꾼 부산국제음악제

입력 2026-08-26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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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마루국제음악제에서 부산국제음악제로…지역 음악인 키우고 세계와 연결한 17년

▲2026 부산국제음악제 메인 포스터 (사진제공=부산국제음악제)
▲2026 부산국제음악제 메인 포스터 (사진제공=부산국제음악제)

‘문화 불모지’.

한때 부산을 따라다니던 씁쓸한 수식어였다. 클래식 음악도 예외가 아니었다. 세계적인 연주자를 만날 기회도, 지역에서 음악을 공부한 젊은 연주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알릴 무대도 수도권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그때 부산에 음악제를 만든 사람이 있었다. 백진현 동서대 교수다.

올해 제17회를 맞은 부산국제음악제(BIMF)에는 17년간 음악제가 쌓아온 유명 연주자의 숫자나 공연 횟수를 넘어 사람이 담겨있다.

오는 9월 1일부터 22일까지 부산 전역에서 열리는 제17회 부산국제음악제의 주제는 ‘눈부신 여정(Stellar Journey)’이다. 올해 음악제는 단순히 세계적인 연주자를 부산으로 불러오는 국제음악제를 넘어 부산이 키운 음악인과 다음 세대를 무대의 중심에 세우고, 세계의 음악과 부산을 연결하는 ‘글로컬(Glocal) 음악도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국제음악제의 무대를 부산 음악인에게…‘프린지’와 ‘콘체르토’

백 위원장이 지난 17년 동안 가장 공을 들인 것은 화려한 메인 콘서트가 아니었다.

부산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무대에 설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드는 일이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프린지 콘서트다.

대형 공연장과 메인 무대에서 벗어나 부산 곳곳의 소극장과 문화공간, 카페 등 시민들이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공간으로 음악을 가져간다. 국제음악제의 이름을 달았지만 정작 무대의 문턱은 낮췄다.

지역 음악인들이 관객과 직접 만나고 자신의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자리다.

‘국제’라는 이름의 음악제가 지역 음악인에게도 열려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콘체르토 컴피티션은 한발 더 나아간다.

청년 연주자들에게 사실상 데뷔 무대를 제공한다. 입상자는 부산국제음악제 무대에서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기회를 얻는다.

부산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부산에서 연습한 젊은 음악인이 부산에서 국제무대에 데뷔하는 구조다.

부산국제음악제는 올해도 음악 영재, 라이징스타, 부산 음악인으로 이어지는 ‘부산음악인 시리즈’를 통해 지역 연주자들의 성장 사다리를 마련했다.

9월 15일 해운대문화회관 해운홀에서 열리는 ‘부산음악인’ 무대에는 지역 클래식계를 지켜온 중견 연주자들이, 17일 금정문화회관 은빛샘홀에서는 음악 영재들이, 18일에는 국내외에서 활동 영역을 넓혀가는 부산의 차세대 연주자들이 무대에 오른다.

백 위원장이 음악제를 이어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학생들이 우리 무대를 발 디딤돌 삼아 성장한 뒤 훗날 ‘선생님, 제가 여기 몇 회 때 무대를 섰습니다’라고 말해 주시면 그보다 더 큰 감동은 없다”고 했다.

화려한 공연 하나보다 한 사람의 성장을 기억하는 음악제다.

▲부산음악인 시리즈 중 라이징스타의 메인 포스터 (사진제공=부산국제음악제)
▲부산음악인 시리즈 중 라이징스타의 메인 포스터 (사진제공=부산국제음악제)

학생 오케스트라와 세계 음악인이 한 무대에

젊은 음악인을 위한 무대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드림 프로젝트는 지역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국제음악제의 무대에 세운다.

강서청소년오케스트라와 꿈의오케스트라 부산, 부산SG청소년오케스트라, 학생연합오케스트라 등 지역의 초·중·고 학생들이 전문적인 지도와 마스터클래스를 거쳐 대형 오케스트라 무대에 오른다.

오는 9월 12~13일과 22일 부산시민회관 대극장에서 마련된다.

학생들에게는 단순한 공연 경험 이상의 의미다.

세계적인 음악인들과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면서 ‘나도 언젠가 이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경험을 얻는 것이다.

지역에서 음악을 배우는 아이들에게 국제음악제가 꿈을 구체적인 현실로 바꾸는 발판이 되는 셈이다.

“돈보다 음악”…적은 예산에도 부산 찾는 해외 음악인들

국제음악제의 또 다른 힘은 해외 음악인들과의 관계다.

부산국제음악제는 일본과 중국, 캐나다, 멕시코, 프랑스 등 여러 나라의 연주자들을 부산으로 초청해왔다.

올해는 중국 광저우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부산을 찾는다. 백 위원장이 2003년부터 중국 음악계와 쌓아온 인연과 신뢰가 바탕이 됐다.

눈여겨볼 부분은 예산의 규모보다 음악인들의 신뢰다.

세계적인 음악가들을 초청하는 국제음악제라고 해서 대형 음악제처럼 막대한 출연료를 지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해외 연주자들은 부산행을 택한다.

음악인으로서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고, 다른 음악인들과 만나고, 새로운 도시의 관객과 호흡하는 것 자체에서 의미를 찾기 때문이다.

부산국제음악제가 지난 17년 동안 쌓아온 가장 큰 자산도 여기에 있다.

돈으로만 살 수 없는 음악인들의 신뢰와 음악에 대한 열정이다.

한 음악인이 부산에서 연주하고, 그 인연이 또 다른 음악인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네트워크가 제한된 예산의 한계를 넘어 음악제를 지속시키는 힘이 됐다.

국제음악제의 규모를 출연료나 유명 연주자의 숫자로만 평가하기 어려운 이유다.

좋은 음악을 함께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국경을 넘어 사람을 움직인 것이다.

부산에서 세계를 만나고, 세계에 부산을 알린다

올해 부산국제음악제는 지역 음악인 육성과 함께 도시 전체를 하나의 음악 무대로 만드는 데도 공을 들인다.

프린지 콘서트는 부산의 일상 속으로 클래식을 가져온다. 해외 프린지 콘서트인 ‘월드 프린지 콘서트’는 이탈리아와 코소보, 인도 등 세계 각국의 전통·현대 음악을 부산과 연결한다.

음악을 통해 부산을 알리고, 동시에 세계의 음악을 부산 시민의 일상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이다.

국제음악제가 특정 공연장에서 열리는 행사를 넘어 부산이라는 도시 자체를 하나의 문화 플랫폼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부산국제음악제 조직위원회 관계자는 “지난 17년은 화려한 메인 무대에만 만족하지 않고 부산의 음악인을 키우고 부산이라는 도시의 문화적 품격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온 시간이었다”며 “올해 제17회 음악제가 부산 시민과 세계인이 함께 호흡하는 가장 뜻깊은 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음악으로 사람을 묶고, 고전으로 오늘을 어루만지다

돌이켜보면 지난 17년의 여정은 음악제의 외형을 키우는 과정만은 아니었다.

프린지 콘서트에서 처음 관객을 만난 지역 음악인들, 콘체르토 컴피티션을 통해 국제무대에 데뷔한 젊은 연주자들, 드림 프로젝트에서 세계적인 음악인들과 한 무대에 섰던 청소년들.

그리고 적은 예산에도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로 부산을 찾은 해외 연주자들까지.

이들이 서로 만나고, 다시 다른 사람을 연결하면서 부산의 음악 생태계가 조금씩 자라났다.

음악은 사람을 묶는다.

▲공동집행위원장 백진현 교수 (사진제공=부산국제음악제)
▲공동집행위원장 백진현 교수 (사진제공=부산국제음악제)

언어도, 국적도, 세대도 다르지만 연주자들은 악보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같은 음악을 만든다. 어린 학생과 세계적인 연주자가 같은 무대에 서고, 지역 음악인과 해외 음악인이 한 공간에서 호흡한다.

그리고 바흐와 모차르트, 베토벤과 브람스 같은 고전은 수백 년의 시간을 건너 오늘의 관객 앞에 선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잠시 멈춰 서게 하고, 기쁨과 슬픔, 사랑과 고독이라는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음악으로 사람을 묶고, 고전으로 현대인을 어루만지는 것.

어쩌면 백진현이 17년 동안 부산에서 음악제를 이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화려한 공연 하나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음악을 남기고, 음악을 통해 다시 사람을 연결하는 것.

‘문화 불모지’라는 말을 듣던 도시에서 시작한 음악제는 17년 만에 처음 꿈꿨던 이름을 얻었다.

부산국제음악제.

올해 주제는 ‘눈부신 여정’이다.

그 이름은 지나온 17년을 돌아보는 헌사인 동시에, 앞으로의 여정을 향한 선언에 가깝다.

부산이 키운 음악인이 세계로 나가고, 세계의 음악인이 부산으로 찾아오는 도시.

무대의 주인공만 빛나는 음악제가 아니라 그 무대를 함께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남는 음악제.

부산국제음악제가 꿈꾸는 ‘음악도시 부산’은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연주에서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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