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20세기 음악 소년들이 IT시대에 뭘 느끼든, 세상은 흐르고 변한다. 음악은 청각의 울타리 안에서 힘을 쌓고 역량을 키워왔다. 거실의 전축, 가방 속의 워크맨, 휴대용 CD플레이어와 MP3플레이어까지 그랬다. 스마트폰 초기 시절까지도 마찬가지였다. 시각의 세계, 즉 영상은 청각의 울타리를 쉽게 넘어올 수 없었다. 둘은 다른 영역 안에서 각자의 시장을 만들어왔다. 기술은 영상의 편이었다. 1980년대 워크맨 유행과 함께 시작된 ‘언제 어디서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패러다임은 지금까지 큰 변화가 없다. 구매냐 다운로드냐 스트리밍이냐, 혹은 얼마나 좋은 음질이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더욱 편하게,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영상을 볼 수 있는 기술은 인터넷의 보급 이후 가파르게 발전해왔다. 무엇보다 유튜브의 등장 이후 자기 채널로도 부를 창출할 수 있다는 욕망이 폭발하면서 빠르게 다양한 콘텐츠들이 등장했다. 거기에 넷플릭스를 비롯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대중화로 세상은 콘텐츠의 은하가 됐다. 음악이 가졌던 청각의 울타리도 허물어졌다.
그리하여 음악과 영상, 그리고 만화와 소설이 모두 스마트폰이라는 기기 위에서 경쟁한다. ‘시간이 곧 돈이다’라는 말이 고리짝 경구에서 냉혹한 현실이자 비즈니스 어젠다로 재탄생했다. 시간을 놓고 전쟁을 벌인다. 애석하게도, 애초에 청각은 시각을 이길 수 없다. 인간의 뇌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뇌에서 시각을 관장하는 영역은 아예 다른 감각 영역과 분리되어 따로 존재한다. 그것도 가장 크다. 진화를 통한 생존의 결과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기간, 스트리밍 시장이 성장했다. 자산 버블의 수혜로 고급 오디오 시장도 커졌다. 그러나 영상 플랫폼은 그 이상의 성과를 기록했다.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시간을 빨아들였다. 코로나19의 공포가 먼 옛날처럼 느껴지는 지금도 크게 달라진 건 없다. 기술의 발전으로 음악은 결국 영상에게 패배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경쟁우위는 있다. 공연이다. 디지털과 스마트폰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시간의 독점자. 청각과 시각을 레코딩 기술의 탄생 이전으로 되돌리는 경험의 콘텐츠. 음반의 시대가 끝나면서 오히려 성장해온 시장이다. 팬데믹이 끝나면서 폭발했다. 과거 적자에 시달리던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은 3년 넘게 매진됐다. 내한 공연을 비롯, 희소성이 높은 공연 또한 마찬가지다.
안타깝게도, 젊은 뮤지션들 중 공연보다 온라인 콘텐츠에 집중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쉽고, 빠르며, 자극적으로 팔로어와 ‘좋아요’로 관심의 정량을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악의 본질은 역시 공연이다. 사실 레코딩 기술이 등장하기 전엔 음악과 공연은 동의어나 마찬가지 아니었던가. 다른 ‘콘텐츠’들과 경쟁하지 않고 오롯이 시간을 무대위에 선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창작자와 기획자 모두 더 나은, 경쟁력있는 공연에 집중할 때 현대의 시간 전쟁에서 우월한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다. 좋아요와 팔로어로 측정할 수 없는, 음악 태초의 에너지를 무엇으로 이길 수 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