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광장-임성호의 정치원론] 선관위의 무력화, 정치권의 무법화

입력 2026-08-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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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공분속 필수기능 잃어선 안돼
정치 양극화에 심판기능 회복하고
맹목적인 정파주의 득세 경계해야

무능·부패한 공적 기관을 개혁할 때 유의할 점이 있다. 조직 개편과 인적 교체는 과감히 추진해 병폐를 도려내되 핵심 기능까지 없애버려선 곤란하다. 문제의 기관에 대한 분노와 개혁 열망이 너무 세다 보면 그 기관을 무력화하고 심지어 해체·병합하기도 하는 가운데 경솔하게 핵심 기능마저 날려버리기 쉽다.

이 위험성은 요즘 검찰과 육군사관학교에 대한 개혁 논란에서 엿볼 수 있다. 검찰의 정치색을 없애겠다고 보완 수사권마저 뺏음으로써 법질서 수호라는 검찰의 핵심 기능을 아예 삭제한 건 아닌지 의견이 분분하다. 정치군인들을 배출했던 육사의 기를 꺾겠다고 통합사관학교로 통폐합시킴으로써 유능한 장교 양성이라는 핵심 기능을 무색하게 한 건 아닌지 의구심을 낳고 있다. 그나마 이 사례들은 갑론을박 속에 사회적 관심과 경계심을 자아낸다. 반면, 근래 선거관리위원회의 경우는 워낙 강한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며 여야 양쪽의 집중포화를 받고 있어서 조만간 특검 조사 후 개혁 단계에서 별 이견 없이 조직과 인적 구성이 대폭 잘릴 뿐만 아니라 핵심 기능까지 당연하다는 듯이 잃을 가능성이 있다.

연이어 터진 선관위의 인사 비리, 업체 유착, 예산 낭비, 투개표 관리 부실, 통계치 오입력을 생각하면 정말 무슨 존재가치가 있을까 회의가 들기도 한다. 그러나 명색이 헌법기관인데 필수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부분이 없겠는가. 엉망으로 해서 문제지만, 선거제도 건의, 유권자 참여 독려, 선거 홍보, 유권자의 알 권리 충족, 선거운동 감시, 선거비용 관리, 투개표 진행, 선거 결과 인증 등 방대한 업무를 포괄한다. 우리나라에선 헌법 규정대로 선관위가 정당 사무에 관여하며 국고 지원도 해준다. 심지어 여론조사 관장, 대국민 민주주의 교육도 선관위의 업무 범주에 들어있다. 이런 다양한 활동을 관통하는 가장 결정적인 기능은, 후보자들이 법 테두리 안에서 경쟁하도록 하고 유권자가 자유롭게 투표하도록 함으로써 승자의 정통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 기능이 과거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엔 한국 민주주의 정착에 큰 공헌을 했다. 당시 각종 선거가 중대한 불상사 없이 진행되고, 선거로 권력 교체가 이뤄지고, 패자들이 결과에 승복한 이면엔 선관위의 이런 기능이 있었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선거 민주주의의 압축 성장 사례로 칭찬받았고, 선관위는 그 중요한 요소로 공을 인정받았다. 오늘날 조직의 안이함, 자만, 오만이 결국 자폭의 화를 불렀지만, 향후 개혁으로 선관위가 전적으로 무력화돼 핵심 기능까지 너무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특히 우려스러운 건 규정·규범 다 무시하는 정치권의 무법 행태가 더 심해져 선거 결과의 불복을 낳고 선거 승자의 정통성마저 훼손될 가능성이다. 정치 양극화는 이미 위험 수위에 달해 선거는 야비한 무법 전쟁터가 되었고 부정선거 논란이 승복 문화를 깨뜨려 여야 관계가 난장판에 빠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이 상황은 선관위의 권위와 기능이 추락하면 더 나빠질 게 뻔하다. 적개심에 불타는 정당들 사이에서 완충역이자 심판을 맡은 선관위가 찌그러져 영이 서지 못하면 국가체제의 생존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

선관위 개혁은 불가피하고 시급하나 핵심 기능은 살리게 지혜를 짜내야 한다. 정치권이 무기력한 선관위를 무시하고 막 나가면 “자유 표심을 향한 자유 경쟁”(free competition for free votes)은 “맹목적 정파 표심을 향한 무법 경쟁”(dirty competition for blind partisan votes)으로 변질된다. 편협한 선거지상주의를 넘어 다면적으로 조화로운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건 아예 물 건너가고 선거마저 불신받는 최악의 퇴행적 사태가 벌어질까 벌써 두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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