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일 장기금리 급등세가 새로운 악재로 떠오르면서 증권가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채권발 유동성 쇼크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다른 편에서는 기업 실적과 낮아진 코스피 밸류에이션을 근거로 과도한 공포를 경계해야 한다는 조언을 내놓았다.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국 30년물 국채금리가 5.3%를 돌파하고 일본 10년물(2.96%)과 30년물(4.155%) 국채금리가 수십 년 만의 최고치를 경신했다. 글로벌 장기금리 급등에 전날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5.80%(398.66) 하락한 6471.17에 거래를 마쳤다.
증권가에서는 고금리를 극복할 펀더멘털의 힘에 주목하는 낙관론과 채권발 유동성 쇼크를 우려하는 경고론이 대립하고 있다.
낙관론 측에서는 기업들의 강력한 이익 성장세와 정책당국의 관리 의지를 근거로 국내 증시의 추가 상승을 점치고 있다. 김병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장기 국채 금리는 하향 안정화될 것"이라며 "최근 엔화 약세 방어 과정에서 나타난 미국과 일본의 공조, 장기채 수급부담을 완화하려는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의 의지, 과묵한 워시 의장의 태도 등은 미국 국채 금리 안정화에 대한 정책당국의 관심이 어느때 보다 높아졌음을 의미한다"고 짚었다.
서정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2분기 스탠더드앤푸어스(S&P) 500 지수의 주당순이익(EPS) 성장률이 역대급 수준인 전년 대비 52%에 달하고 올해와 내년 이익 전망마저 재차 우상향하고 있다"며 "하이퍼스케일러들의 경우 대규모 자본 지출과 차입 의존도 증가로 인해 금리 민감도가 높아질 것이란 우려가 있었으나, 금번 실적 결과에서 확인된 것처럼 강력한 이익 성장이 이를 충분히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제2의 '트러스 쇼크'가 터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일본계 자금의 '리패트리에이션(본국 환류)'을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꼽았다. 그간 저금리를 활용해 미국 등 해외 자산에 투자됐던 일본 생명보험사와 연기금 자금이, 높아진 일본 국채 금리와 엔화 방어 비용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해외 채권을 팔아 본국으로 회수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실제 일본의 미국 국채 보유액은 최근 2개월 연속 감소했다.
자금 이탈이 현실화되면 2022년 영국 '트러스 쇼크'와 유사한 채권시장 발작이 일어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대규모 회사채를 발행해 AI 투자를 집행 중인 글로벌 빅테크의 자금 조달 리스크가 커지고, 자산시장 전반의 유동성이 급격히 위축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른 한편, 국내 반도체 대형주는 밸류에이션이 이미 충분히 낮아 금리 상승에 따른 충격이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석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최근 주가 조정은 추세 훼손보다 매크로 변수와 수급에 따른 단기 변동성 확대에 가깝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선행 주가수익률(PER)이 3~4배 수준으로 낮아진 상황에서 장기금리 상승에 따른 밸류에이션 부담이 나타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도 "올 상반기 4~6월 중 미 30년물 금리가 5.0%를 웃돌았을 당시 코스피 12개월 선행 PER은 7배 초·중반이었으나, 현재는 5.6배 내외에 불과하다"며 "상반기 대비 금리 상승에 대한 주가 민감도가 낮아진 상태"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미 국채 금리와 기술주 회사채 가산금리 등 관련 지표에 대한 단기 민감도에 대비하되, 펀더멘털 훼손이 없는 만큼 과도한 불안감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