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 디지털공론장 ‘침묵하는 다수’ 권익 풀길

입력 2026-08-07 06:00

기사 듣기
00:00 /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성과급 논란·검찰 보완수사권 폐지…
소수 주도로 ‘다수의 이익’ 침해당해
디지털 인프라 기반 공론장 만들어야

최근 증시는 고점 대비 상당 폭 하락했지만, 정작 발표된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의 실적은 역대급이다. 이 거대한 영업이익을 둘러싸고 몇 달간 벌어진 일들은 주주와 이해관계자 가운데 누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지를 다시 묻게 한다.

논의의 시작은 성과급이었다.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성장에 기여해온 노동자들이 보상을 요청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배당 대신 투자를 지지해온 주주로서는, 외생변수가 작용한 성과의 과실은 주주 몫이라 주장할 수 있다. 과실을 요구한 것은 노동자만이 아니었다. 정부와 지자체 역시 그간의 기여를 강조했고, 결과적으로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대의에 경영진이 화답하는 형태로 논의가 진전됐다. 다만 주주의 가치가 반영되었는지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클러스터가 유리한 조건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주를 설득할 수는 있으나, 이 정도 규모의 투자는 회사의 유연성을 떨어뜨리고 불확실성을 키우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정치권의 흐름이 정반대라는 점이다. 1인 1표제는 민주주의의 당연한 지향이지만, 최근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 결정을 둘러싼 국면에서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보조금을 받는 정당이 당원만을 만족하게 해도 되느냐는 논란이 불거졌다. 정당의 결정에 이해관계를 갖는 국민의 목소리가 반영돼야 한다는 주장은, 주주만의 이익보다 이해관계자를 고려하자는 이해관계자 중심주의와 맞닿아 있다. 정당의 생존이 국민의 지지에 달려 있다면 더욱 그렇다. 여기에 이중 당적 논란까지 더해지며, 조직화된 소수가 양대 정당의 의사결정을 좌우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마저 제기된다.

당비를 내는 책임당원은 주식을 장기 보유한 주주에 빗댈 수 있다. 정당은 가치를 공유하는 결사체이므로 국민이 주인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점은 기업의 다른 이해관계자도 마찬가지다. 이해관계자중심주의의 핵심은 기업의 성과에 사회적 지원이 있었음을 인정하는 데 있다. 정당의 성장에 국민의 공적 자금이 한 역할을 인정한다면, 그에 대한 책무도 당연히 따른다. 경제에서는 주주의 입김이 줄어드는 반면 정치에서는 주주에 해당하는 당원의 입김이 강해지는 역설적 상황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이해관계가 희석된 다수의 이익을, 이해관계가 분명한 소수가 주도해 침해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기업이 의도와 무관하게 부정적 외부효과를 낳는 이상 이해관계자를 폭넓게 고려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도그마가 되어 모든 결정에 우선해야 한다는 식은 곤란하다. 정부가 상법 개정으로 주주 권익을 강화하는 것도, 장기투자 주주야말로 지속가능성에 관심이 클 수 있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 장기 주주에 해당하는 이들이 바로 책임당원이며, 이들에게 의사결정을 묻는 것 자체는 타당하다. 문제는 대표성이다. 기업이 미래를 걱정하는 투자자와 그렇지 않은 투자자를 구분하지 못해 겪던 문제를, 정당은 지금 진짜 당원과 특정 단체를 대변하는 침투자 사이에서 겪고 있다. 선관위가 눈치 보는 대신 정당법을 적용해 이중당 적을 정리하는 것이 현재의 해결책이다. 그러나 근본적 과제는 따로 있다. 개인에게는 얇게 퍼져 있지만, 총합은 분명히 큰 다수의 이익이 조직된 소수의 집중된 이익에 밀리는 구조를 바꾸는 일이다.

이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은 정치에서는 여론조사, 기업에서는 주주총회 정도다. 그러나 적은 표본에 의존해서는 대의민주주의와 대리인 문제가 남긴 공백, 곧 침묵하는 다수의 이익을 지키기 어렵다. 이들의 의견을 공론의 장으로 올려야 하는 이유다.

기술의 발전은 그 공백을 메울 가능성을 보여준다. 구글 딥마인드가 2024년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하버마스 머신’ 실험이 대표적이다. 브렉시트와 이민처럼 첨예하게 갈리는 사안에서 5천여 명의 의견을 AI가 중재한 결과, 인간 중재자 대비 더 높은 동의 수준을 보이는 합의문이 도출됐다. 소수 의견을 지우지 않으면서였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폐해를 두고 규제와 표현의 자유가 맞서 왔지만, 정작 성향이 다른 공간 사이의 대화는 사라졌다. 2000년대 이후 뚜렷해진 분절과 양극화 앞에서, 공론의 장을 다시 세우려는 실험이 필요한 이유다. 물론 디지털 숙의 역시 조직된 소수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 앞에서 내 의견을 전달할 기회를 갖는다는 점이다. 어떤 경우는 내 의견이 소수임을 알게 되겠지만, 반대로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렇게 간극은 줄어든다.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인프라를 갖춘 우리나라야말로 이 실험을 가장 먼저 해볼 수 있는 나라다. 우리가 먼저 시작할 수 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코스피, 4% 하락에 6270선 마감…삼전·SK하닉 '와르르' 각각 6%·10%대 급락
  • ISA 계좌, 5년마다 깨라고요? [이슈크래커]
  • 김정관 장관 “반도체 성과급, 주총 승인 받도록”…상법·자본시장법 개정 시사
  • 세금 꺼낸 정부에…오세훈 서울시장 “집값 해법은 공급” [종합]
  • 李 "폭염은 국가적 기후재난"…냉방·전력망 확충 등 예산 반영 주문 [종합]
  • 中 딥시크, AI 가격 대폭 인상 예고⋯‘초저가 전략’ 접나
  • 반도체 날개 달고 날았다⋯'역대급' 상반기 경상수지 흑자 2000억달러 육박 [종합]
  • 단독 실리콘투, 라이브커머스팀 신설…K뷰티 ‘글로벌 라방 판매’ 확대
  • 오늘의 상승종목

  • 08.06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91,372,000
    • -0.38%
    • 이더리움
    • 2,700,000
    • -0.3%
    • 비트코인 캐시
    • 302,200
    • -0.56%
    • 리플
    • 1,472
    • -2.52%
    • 솔라나
    • 103,200
    • -1.62%
    • 에이다
    • 288
    • +5.88%
    • 트론
    • 465
    • +0%
    • 스텔라루멘
    • 230
    • -2.54%
    • 비트코인에스브이
    • 18,800
    • +3.35%
    • 체인링크
    • 11,620
    • +0.43%
    • 샌드박스
    • 58.65
    • -0.71%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