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데이터와 풍경 사이

입력 2026-06-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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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 시작 즈음, “삐리릭” 알림 소리와 함께 휴대전화로 영상 하나가 도착했다. 낙서가 겹겹이 덧씌워진 허름한 벽에 녹슨 철제 계단이 기대어 있는 풍경이다. 이따금 이런 영상을 보내오는 이는, 도시의 세월을 포착해 익숙한 풍경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사진작가이자 나의 오랜 환자다.

삼십여 년 전이었다. 꽤 당황한 기색의 삼십 대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섰다. 체중이 급격히 줄고, 가시지 않는 갈증에 물을 찾고 또 찾고, 소변을 자주 보았다. 가까운 의원에서 혈당을 재니 ‘측정 불가’였다. 측정기가 인식할 수 있는 범위를 훌쩍 넘어선 수치였다. 의원 원장님은 지체할 상황이 아니라며 곧바로 당뇨병 전문의에게 의뢰했다. 그렇게 당뇨병 관리가 시작되었다. 당뇨병은 진료실 안에서만 관리되는 병이 아니다. 식사와 운동, 생활의 습관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진료가 쌓이는 만큼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도 함께 쌓였다.

환자는 몸의 이상을 안고 진료실 문을 열고, 의사는 그의 이야기를 증상과 검사 결과 속에서 읽어낸다. 진료는 질병에서 시작되지만, 결국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오늘날 진료는 더욱 세분화되고 의료기기는 더욱 정교해졌다. 진료실 안에 데이터는 넘치지만, 그 수치를 일상에서 살아내는 사람은 자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을 다시 진료의 중심에 놓으려는 여러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그중 하나로, 환자와 친구처럼 지내며 진료하라는 권고도 있다. 그러나 당뇨병처럼 꾸준한 생활 습관 관리가 필요한 질환에서는, 엄격한 지시와 평가라는 돌기둥이 버티고 서 있어야만 한다. 진료란, 정서적 교감과 전문적 엄격함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과정이다. 질병과 건강도 사람의 일이며, 진료실 또한 삶의 공간이다. 그러므로 진료실 안팎이 동떨어질 수 없다.

첫 환자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짧은 틈새에, 답글을 보낸다. “고맙습니다. 오늘도 생생한 시선.” 유형준 씨엠병원 내분비내과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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