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 작아도 신뢰 갖춘 통화도 있어
환율충격 막을 ‘원화 국제화’ 추진을

중동에서 전쟁의 불씨가 타오를 때마다 한국의 외환시장은 요동친다. 유가가 오르고, 달러 환율은 치솟는다. 이 패턴에 우리는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반복되는 이 현상은 단순한 시장 반응이 아니다. 세계 경제 질서가 어떻게 설계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구조적 신호다.
달러 가격은 왜 위기 때마다 더 강해지는가? 중동 전쟁은 미국에도 악재다. 이 역설의 이면에는 미국이 구축한 ‘달러 임페리얼 서클(The Dollar’s Imperial Circle)’이 자리 잡고 있다. 달러 임페리얼은 ‘달러패권’을 의미한다. 달러가 글로벌 제조업과 원자재 가격에 영향을 미치며 세계 경제가 순환하는 메커니즘이 ‘달러 임페리얼 서클’이다. 달러는 단순한 통화 이상의 역할을 넘어 미국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도구다. 석유·원자재 거래는 대부분 달러로 결제된다. 국제금융결제망(SWIFT)·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같은 글로벌 금융 인프라 역시 달러 중심으로 작동한다.
전쟁이 나면 세계는 미 국채와 같은 안전자산을 찾는다. 달러가 필요하다. 이런 요소들이 결합해 위기일수록 달러가 더 필요해지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달러는 단순한 통화가 아니다. 세계 질서의 운영체제(OS)다. 한국은 이의 ‘사용자’다. 에너지 순수입국인 한국에는 유가와 달러의 이중 족쇄로 작용한다. 유가가 오르면 수입 물가가 오르고, 달러가 강해지면 환율이 오른다. 이 두 충격이 한국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 경제는 세계 10위권이지만, 통화·에너지·금융 인프라 측면에서는 여전히 ‘가격 수용자’다.
질문은 자연스럽게 ‘원화의 국가 전략은 무엇인가?’로 이어진다. 원화를 기축통화로 만드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그러나 원화의 목표를 ‘글로벌 니치 통화’에 두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니치(Niche)는 원래 프랑스어로 ‘틈새’를 의미하는 단어다. 스위스 프랑(CHF), 싱가포르 달러(SGD), 노르웨이 크로네(NOK)처럼 규모는 작지만, 특정 영역에서 확실한 신뢰와 존재감을 가지는 통화로 만드는 것이다. 한국이 가진 강점은 분명하다. 한국은 반도체·배터리·디지털 인프라 등 미래 산업의 핵심 국가다. 기술·제조·혁신 분야의 글로벌 공급망을 통화와 연결하면, 원화는 단순한 결제 수단을 넘어 ‘미래 산업의 투자 통화’가 될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무역 결제에서 원화 사용을 확대하는 것이다. 동남아·중동·중앙아시아 등과 원화 표시 계약을 확대하고, 결제 인프라로 통화스와프를 활용하는 것이다. 둘째, 원화 자산의 글로벌 투자 매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국채·회사채 시장의 깊이를 확대하고 원화 표시 상장지수펀드(ETF)나 환경 친화적 채권인 ‘그린본드’ 인프라 채권 등을 상품으로 다양화하는 것이다. 셋째, 특정 산업에서 원화 기준 가격을 형성하는 것이다. 반도체·배터리 공급망 계약, 탄소배출권·전력·수소 등 신산업 시장 진출, K콘텐츠와 IP라이선스(지식재산권) 계약을 원화로 추진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들을 지속하면, 원화는 “특정 분야에서 반드시 참고해야 할 통화”, 즉 글로벌 니치 통화가 될 수 있다.
유가·달러 변동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중동의 지정학 리스크는 사라지지 않는다. 미국의 달러패권을 한국이 통제할 수 없으나, 한국이 통화·금융·산업 구조를 재설계한다면, 지금의 충격을 훨씬 더 잘 흡수할 수 있다. 원화의 국제화는 단순한 금융정책이 아니다. 한국이 앞으로 어떤 나라로 기억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다. ‘제조 강국’에서 미래 산업을 상징하는 국가로 나아가는 과정, 그 여정의 한복판에 ‘원화의 국제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