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봉쇄 외에도 석유ㆍ천연가스 시설도 파괴⋯복구에 3~5년"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중동 전쟁 여파로 올해 유가가 배럴당 평균 96달러 선에 도달할 경우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0.9%포인트(p)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전쟁 격화로 인한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평균 유가가 그 두 배에 달하는 200달러선에 달할 가능성도 제시돼 향후 국내외 경제 불확실성에 따른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앨버트 박(Albert park) ADB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4일(현지시간)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ADB연차총회 한국은행 기자단 간담회에서 '중동 분쟁과 아시아ㆍ태평양 지역 : 최신분석' 브리핑을 통해 "최근 저희가 강조하고 있는 점은 중동발 공급망 혼란이 훨씬 더 지속적이고 장기화될 것이라는 점"이라며 "분쟁이 끝나더라도 유가는 당분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ADB가 고유가 장기화 흐름을 바탕으로 내놓은 시나리오는 크게 2가지다. 우선 신규 참조 시나리오(New Reference Scenario)가 현실화될 경우 올해 연 평균 유가가 배럴당 96달러, 내년에는 80달러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봤다. 이보다 분쟁이 격화돼 에너지 인프라 악화가 심화되는 하방 시나리오 상에서는 유가가 배럴 당 200달러를 돌파하고 연간 평균 150달러에 달할 가능성도 제시됐다.
특히 이번 중동 사태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따른 원자재 운송 차질 외에도 석유와 가스 생산 능력이 파괴됐다는 점도 함께 짚었다. 박 이코노미스트는 "천연가스의 경우 카타르의 라스 라판(Ras Laffan) 시설을 포함한 액화시설 폭격으로 전 세계 생산능력의 17%가 영향을 받았다"며 "시설 복구에만 최소 3년에서 5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돼 천연가스 공급 차질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중동 사태는 아시아 주요국, 특히 GDP 대비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적지 않은 도전이 될 것이라는 게 ADB의 판단이다. 박 이코노미스트는 "최대 50%까지 유가가 폭등한 국가에 비하면 한국은 20%대 상승해 낮은 수준이긴 하나 소비자와 생산자, 정부 재정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면서 "질소 비료의 핵심인 요소 가격이 85% 급등했고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황과 폴리에틸렌 등 가격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국내 상황은 ADB가 전망한 시나리오별 성장률 변화 추이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박 이코노미스트는 "저희 시나리오로 한국 경제를 분석한 결과 아시아 전체 평균보다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연 평균 유가가 96달러에 이르는 시나리오 적용 시 국내 성장률은 올해와 내년 각각 0.9%p, 0.5%p 하락할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는 에너지 의존도와 물가 상승에 대응한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반영된 결과"라고 말했다.
다만 역대급 호황을 기록 중인 반도체 수출 호조가 전쟁 하방 리스크를 일부 상쇄할 것이란 관측도 내놨다. 박 이코노미스트는 "긍정적인 면은 올해 1분기 AI와 반도체 이슈로 한은이 성장률 전망치를 높였다는 점"이라며 "이 같은 수요가 유지된다면 중동 위기로 인한 하방 압력을 일부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주요 원자재들이 중동에서 수입돼 오는 만큼 분쟁이 장기화될 경우 생산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도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한편 박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을 비롯한 각국의 대응원칙으로 △보편적 보조금 지양 △신중한 통화정책 시행 △에너지 관련 투자 등을 제시했다. 그는 "모든 가구에 대한 연료 보조금이나 세금 감면은 고소득층에 더 큰 혜택이 돌아가고 재정 부담이 커지는 요인인 만큼 취약계층을 타깃으로 한 선택적 지원이 필요하다"며 "중앙은행 역시 기대 인플레이션과 2차 파급효과 등을 면밀히 분석하고 투자 위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성급한 금리 인상은 지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