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난자 보관량 13만개...10년새 17배 폭증

“당장 결혼 계획은 없지만 지금 (난자를) 안 얼리면 늦을 것 같아서요.”
지난 3월 17일 서울역 차병원 대기실에서 만난 이지안(가명·노원구·35)씨는 523번째 순번표를 손에 쥔 채 난자동결 시술을 하려는 이유를 묻자 이렇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대기실에는 번호표를 확인하는 시선과 짧은 상담이 오가는 긴장된 분위기가 이어졌다. 본인 순서가 왔을까 자리를 뜨지 못한 채 차례를 기다리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결혼과 출산 시기를 미루는 흐름 속에서 난자동결이 ‘지금은 낳지 않지만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선택지로 자리 잡고 있다. 출산 의향은 있지만 당장 실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시간을 확보하려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이를 ‘생식력 예금’에 가까운 개념으로 설명한다. 난자를 보존해 두고 향후 필요할 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라는 의미다.

이 씨처럼 언제인가 있을지 모를 2세와의 만남을 미루며 미래를 붙잡는 여성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5일 본지가 보건복지부에 의뢰해 받은 ‘생식세포 보존 현황’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난자 보관량은 13만3926개다. 2015년(8018개)엔 1만 개에 못 미쳤지만 10년새 무려 17배가량 폭증한 것이다.
대기실에서 만난 30대 직장인 여성들은 대부분 비슷한 이유를 말했다.
한 여성은 “일이 어느 정도 자리 잡을 때까지 출산을 미루고 싶다”며 “그 사이에 선택지가 완전히 사라지는 건 막고 싶었다”고 했다. 또 다른 여성은 “결혼 계획은 불확실한데 나이는 계속 들다 보니 (아이를 못 낳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커졌다”며 “지금이라도 준비해두면 마음이 조금 놓일 것 같았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결혼 시기 불확실 △경력 단절 우려 △연령 증가에 따른 가임력 저하 불안 등이 선택적 난자 냉동을 하는 데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특히 30대 중후반 여성의 경우 “지금이 아니면 늦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선택을 밀어 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였다.
연령대도 점차 넓어지는 분위기다. 서울 마곡 차병원의 한 간호사는 “30대가 가장 많지만, 40대 중후반 여성들도 지방에서 올라와 상담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늦게라도 가능성을 남겨두려는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의료진 역시 난자동결을 ‘결과 보장’이 아닌 ‘가능성 확보’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한세열 마곡 차병원 난임센터 원장은 “질병 대비 목적의 난자동결이 보험이라면, 사회적 난자동결은 예금에 가깝다”며 “지금의 난자를 저장해두고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선택지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