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장애인권리법’이 던지는 산업 화두

입력 2026-04-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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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석경사로, 영상 자막 기능.’ 여기엔 공통점이 있다. 장애인들의 요구로 만들어진 것이다. 각각 휠체어 이용자가 건널목을 건널 때 턱 없이 다니겠다는 요구 끝에, 청각장애인도 방송을 볼 수 있게 하려고 만들어졌다. 이렇게 장애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제품과 서비스를 이제 모두가 일상에서 편하게 쓴다.

장애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인 ‘장애인권리보장법’이 이달 23일 발의 10년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장애를 개인 특성과 사회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보는 사회적 모델을 법으로 선언한 첫 권리기본법이다.

장애인은 시혜 대상 아닌 ‘권리의 주체’

장애인을 ‘시혜의 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 명확히 규정했다. 존엄권·평등권·자기결정권 등을 명시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권리보장 책무를 분명히 했다. 특히 ‘자립생활 권리 보장을 위한 탈시설화’가 처음으로 법에 명시됐다. 시설 중심 보호에서 장애당사자들이 자립적으로, 지역사회에서 어울려 살아가는 걸 권리로 본다는 분기점이다.

법조항 대부분의 주어는 ‘국가, 지방자치단체’다. 하지만 이 법은 결국 민간업계에도 화두를 던진다.

첫째, 장애인들이 각종 시설, 서비스, 제품에 접근하고 이동할 수 있게 하는 데 기업이 참여해야 할 책무가 명확해졌다. 제품에 국한되지 않고 서비스와 정보 데이터까지 포함된다. 국가와 시민이 생산할 장애 관련 데이터를 민간이 활용하거나, 민간과 시민이 만든 데이터를 국가가 활용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장애·비장애 시민들과 함께 만든 ‘지하철 교통약자 환승지도’, 경사로 데이터를 모으고 맞춤 경사로를 놓는 ‘모두의 1층’ 사업을 서울 밖으로 확산하고 있는 무의 입장에서는 더 많은 지자체, 기업이 인권 증진에 참여할 명분이 생긴다는 반가운 신호다.

둘째, 보편적 디자인의 연구·개발·확산에 힘써야 한다는 조항이 단순 사회공헌을 넘어 관련 산업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 흐름을 선점하는 기업이 분명히 나올 것이다. 마침 4월에 LG전자가 ‘볼드무브’란 고객커뮤니티 모집을 시작했다. 장애인·노인 당사자들이 본인 관점에서 제품을 디자인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커뮤니티다. LG전자가 사회공헌이 아니라 본업인 제품 개발의 한 축으로 보고 있다는 게 흥미롭다. 무의가 현대로템의 지원으로 서울시, 서울교통공사와 함께 만들고 있는 ‘모두의 지하철’ 교통약자 안내표지 사업도 유니버설디자인의 관점에서 더 주목받을 가능성이 크다.

셋째, 문화예술·체육에서 장애 당사자 참여를 보장하는 조항이다. 18일 무의는 배리어프리마라톤 키움런을 위해 장애인 접근성 서비스 수십 개를 준비했다.스포츠 등 행사에서의 접근성이 사회에 더 확산되는 것인 만큼 이번 법은 시의적절하다. 법조항에 탄력받아 각종 문화접근성이 산업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사회공헌 넘어 산업 확장은 기업의 몫

탈시설 명문화 역시 산업적 함의가 크다. 장애인 중 노년층 비중이 높은 만큼, 요양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잘 살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된다. 올해 함께 통과된 돌봄법안과 맞물려 돌봄의 사회적 수요도 더 넓어진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잘 살 수 있으려면 당장 접근가능한 주택부터 마련돼야 한다. 산업적인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만약 1970년대 미국에서 망치로 도로 턱을 깨며 시위했던 장애인들이 없었다면, 유아차와 캐리어, 자전거를 타고 자연스럽게 연석경사로를 통해 길을 건널 수 있었을까. 장애 당사자가 스스로 권리의 주체임을 자각하고 욕구를 표현하는 순간, 세상은 더 편리해졌다. 변화는 언제나 ‘욕구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법이 첫걸음을 뗐다. 업계가 그 뒤를 이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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