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벼운 호기심으로 시작하지만, 디지털 알고리즘은 내가 한 번 머문 자리를 집요하게 기억한다. 선호했던 주제의 영상들이 여과 없이 휴대전화 화면 속에 끝없이 밀려 온다.
힐끔힐끔 보다 보면 두어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렇게 무수히 소비한 영상과 댓글의 내용이 얼마 지나지 않아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는 무엇을 본 것인가. 순간적인 몰입과는 달리 기억에 남는 것은 거의 없다. 왠지 배신당한 느낌도 들고 허무한 마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인가? 정보는 넘쳤지만 주제나 스토리가 뚜렷하지 않고 댓글 또한 단편적이고 자극적이다. 나의 사고를 정리할 틈이 없다.
매리언 울프(Maryanne Wolf) 미 UCLA 교수는 AI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학생은 스스로 생각하는 학생에 비해 뇌 활동이 현저히 적고 뇌발달이 저하되는 현상을 발견하였다고 하였다. 깊이 읽기가 약화될 때, 인간의 사고 능력 역시 단편화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진료실에서도 그 단면을 본다. 인터넷을 떠도는 짧은 의학 숏폼 정보를 근거로 치료 방향을 묻거나, SNS에서 보고 읽은 단편적 주장에 확신을 갖고 오는 환자들을 만난다. 전문적 판단 없이 알고리즘이 추천한 정보를 맹신하는 것이 안타깝고 때로는 위험해 보이는 것이다. 정보를 정확히 판단하고 받아들일 전문적 지식과 경험이 없다 보니 그것을 믿을 수밖에 없다.
짧은 문장의 트윗과 자극적인 비디오 클립에 익숙해진 우리들이 AI 시대를 맞이하여 왜곡되고 파편적(破片的)인 이야기를 나누는 습관이 계속되지 않을지 염려가 된다. AI는 도구일 뿐이다. 도구가 인간의 사고 방식을 간섭하기 시작할 때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는가?
요즘 학생들은 책을 숏폼처럼 본다고들 한다. 책을 읽는 패턴이 자극적 영상을 보는 패턴과 유사하여 시선이 표류한다고 한다. 당연히 문해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속도와 자극의 시대 속에서 우리는 과연 깊이 생각하는 능력을 지켜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수많은 정보가 아니라, 더 올바르고 탄탄한 사유(思惟)라는 점이다. 현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세계를 온라인에서 누리며 만족하는 사이에 우리의 정신 건강은 더 피폐해지고 오히려 심리적 고립은 더 심화될 수도 있지 않을까?
서종호 부천시민의원 진료원장·한국의사시인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