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정도 지났을까? 특정 가수의 음악 스타일을 재현하는 걸 넘어 목소리까지 학습하여 마치 그 가수의 신곡인 듯한 ‘창작’을 선보였다. 완성도는? 타이틀 곡은 못 돼도 비중 없는 수록곡 정도는 됐다. 그래도 냉소할 단계는 아니었다. 신기함에 두려움이 더해졌다. 저작권, 창작윤리 같은 걸 기준으로 그 시점의 AI를 논했다. 벤야민, 보드리야르 같은 케케묵은 철학자들의 이론까지 써먹었다. 거꾸로 말하자면 그런 이론이나 들먹일 만큼 음악적, 또는 미학적으로는 별로였다는 얘기다.
얼마 전, 수노(suno)라는 어플을 알게 됐다.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원하는 스타일의 음악을 만들어준단다. 해시태그 형태로 키워드를 입력했을 뿐인데 이게 웬걸, 제법 그럴듯한 노래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국어 가사는 물론 AI 티가 전혀 나지 않는 보컬까지 쭉 흘렀다. 중학생은 아득히 넘어섰고 웬만한 실용음악과 학생 이상의 수준이었다. 사용자들이 반복적으로 깎고 다듬은 곡들 중에선 빌보드 차트급의 매력적인 음악들도 있었다. 그 사용자들을 창작자라 불러야할지, 프로그래머라 불러야할지, 프롬프터라 불러야할지는 알 수 없지만 신기함과 두려움을 지나 혼돈의 단계에 온 건 확실해졌다.
수노뿐 아니다. 보다 사실적인 사운드를 원하면 우디오(Udio), AI가 만든 음악을 바탕으로 직접 작업하고 싶으면 아이바(Aiva) 같은 어플도 있다(구글 제미나이가 바로 알려줬다).AI로 만든 음악들은 쇼츠나 유튜브에서 bgm(배경음악)용으로 활용할 수 있지만, 사실 케이팝을 비롯한 기존 업계도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콘셉트에 맞는 프롬프트를 입력해서 다양한 곡들을 뽑아낸 후, 그중 그럴싸한 걸 사람이 다듬어서 발표하는 식이다.
창작의 도리가 떨어졌다며 분개할지도 모르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우리가 듣는 거의 모든 음악에는 레퍼런스가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발표한 위대한 곡에서 AI가 만들어준 곡으로 레퍼런스의 기준이 바뀌었을 뿐이다. 자료를 찾기 위해 포털 사이트에서 원하는 결과를 하나하나 비교해가며 찾던 시대에서 GPT나 제미나이로 한 방에 끝내는 것과 비슷하다.
한 2~3년? 아니, 1년만 지나도 또 달라질 거다. 레퍼런스를 지나 아예 AI가 만든 음악이 스포티파이 차트에 버젓이 올라와있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어떤 AI를 활용했는지 밝히는 게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곡 크레디트에 기타, 베이스 연주자의 이름을 밝히듯 말이다. 창작의 중심이 멜로디에서 비트로, 그리고 사운드로 넘어온 것처럼 이 또한 거부할 수 없으리라.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인간의 인식을 잠식해왔으니 말이다.
그때가 되면 과거를 살았던 나 같은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전기가 사용되기도 전인 19세기 중반, 문명을 떠나 숲속에 칩거했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그런 후손들을 위해 이런 문장을 써뒀다. “인간은 그들이 사용하는 도구의 도구가 되었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GPT한테 물어보려다 참았다. 증기기관 시대도 경멸했던 소로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다. 그래도 궁금하긴 하다. 증기기관차 하면, 지금은 그저 낭만 그 자체인 것 같은데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