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는 기억 위에 세워진다. 현재의 영동전통시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강남이 ‘영동(과거 영등포의 동쪽이라는 뜻)’이라 불리던 시절로 시계를 돌려야 한다. 1970년대, 논현동 일대가 개발되며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그들의 허기를 채우고 살림을 꾸리기 위해 자연스럽게 장터가 섰다. 계획된 상업지구가 아니라, 사람의 온기가 먼저 모여 만든 공간. 영동전통시장의 역사는 곧 강남 서민들의 생활사다.
영동전통시장의 터줏대감인 최병태 중외약국 약사는 1981년부터 45년째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최 약사는 시장의 시작을 ‘이동’과 ‘확장’으로 기억한다.
“1970년대에는 저쪽 동화상가 쪽이 원래 시장이었어요. 거기서 노점들이 하나둘 생기더니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죠.”
최 약사의 증언에 따르면, 현재의 시장 골목은 원래 주택가의 담벼락이었다.
“내려오다 보니 담벼락이었던 곳에 천막을 치고 점포를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시장이 된 겁니다.”
누군가는 생선을 팔고, 누군가는 떡볶이를 팔았다. 담벼락에 기대어 선 노점들이 서로의 어깨를 맞대며 골목을 채웠고, 그 밀도는 또 다른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최 약사는 “그때는 노점에 사람들이 부딪칠 정도로 많았다”고 회상했다. 생선 비린내와 과일 향, 흥정하는 소리가 뒤섞인 골목은 당시 개발 붐이 일던 강남 건설 현장의 노동자들과 새로 입주한 주민들의 거대한 ‘부엌’이었다. 시장은 계획된 시설이 아니라, 치열한 삶이 모여 만들어낸 ‘생활 플랫폼’이었다.

시간이 흘러 강남은 대한민국 부의 상징이 되었지만, 시장은 여전히 ‘기회의 땅’으로 기능한다. 유미희 영동전통시장 매니저는 “강남대로변 상가는 임대료가 비싸 진입장벽이 높지만, 시장은 뒷골목이라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다”고 설명했다.
이 ‘임대료의 틈새’는 젊은 상인들을 불러들였다. 강남 상권이라는 매력적인 위치에서 창업을 꿈꾸는 이들이 시장으로 들어와 소규모 점포를 열었다. 특히 배달 시장에서의 경쟁력은 눈에 띈다. 유 매니저는 “쿠팡이츠 측에서도 강남권 가운데 저희 시장 일대의 배달 매출 경쟁력이 서울시 어느 지역보다 높다고 하더라”며 “젊은 상인일수록 배달과 온라인에 능숙해 시장의 체질을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시장의 뿌리는 여전히 ‘노포’다. 30년을 훌쩍 넘긴 순대국밥집과 옷가게들은 각자의 확실한 노하우와 단골을 보유하고 있다. 최 약사 역시 “오랜 단골들과 정이 들어 떠날 생각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영동전통시장은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생활의 터전이다. 약국에는 상비약을 사러 오는 주민들뿐 아니라, 숙취해소제를 찾는 직장인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시대가 변하며 파는 물건과 손님은 달라졌지만, ‘필요한 것을 구하는 곳’이라는 시장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이러한 영동전통시장의 역사적 가치에 대해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전통시장은 오래된 역사와 토대 위에서 상인들의 노하우가 축적되고, 그것이 상품과 판매로 이어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유럽의 시장처럼 세대를 거쳐 이어진 재료와 상품에 대한 경험과 숙련이 소비자 신뢰로 연결될 때 전통시장의 가치가 살아난다”며 “이런 축적의 시간이 쌓인 시장은 단기간에 대체할 수 없는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