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권력 커지면 개인 자유 위축돼
‘작은정부’ 실현이 국가위협 벗는 길

통일교 측이 교세 확장을 위해 정치인들에게 로비한 정황이 드러나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또 많은 국회의원 보좌관이 퇴직 후 대기업에 취업하여 대관 업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 밝혀진 사례지만, 국가 권력이 만들어 내는 이런 현상은 아주 많다. 그 원인은 무엇이며, 이를 제거하거나 완화하는 길은 무엇일까?
국가는 자원배분의 강제력을 가지고 있다. 즉, 국가는 경제 주체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원배분을 명령하고 바꿀 힘을 지니고 있는데, 이 힘을 바탕으로 각종 규제를 만든다. 물론 규제는 흔히 공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정당화되고 발효된다. 이른바 공익설(公益說)이다. 그러나 공익설은, 규제는 강한 이해관계를 가진 개인이나 집단이 국가가 가진 자원배분의 강제력을 포획하여 획득한 것이라는 조지 스티글러의 사익설(私益說)에 비해 설득력이 턱없이 약해 폐기됐다.
시카고대학 교수였던 스티글러는 규제론을 경제학의 한 분야로 개척한 공로로 1982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는 규제를 수요와 공급으로 설명한다. 우선 국가가 힘을 가지고 있으므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는 자신에게 유리한 규제를 만들어 달라는 로비를 할 유인(誘因)이 생기는데, 이것이 바로 정부 규제에 대한 수요로 나타난다. 통일교 측의 정치인 상대 로비는 통일교의 사업 추진에 도움이 되는 조치를 얻어내려는 것이다.
한편 민주정에서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당선되기 위해서는 유권자의 표가 필요한데, 이들은 자원배분의 강제력을 이용하여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유리한 규제를 만들어 주고 그 대가로 표를 모으기 위한 각종 지원을 받는다. 국가의 기능을 수행하는 정부 대리인이 규제의 공급자가 되는 것이다. 규제로 얻는 이득이 큰 정치인과 관료들이 규제 혁파를 꺼리는 이유다. 이같이 수요와 공급으로 만들어진 규제는 정치 시장에서 가장 높은 가격을 치르는 수요자에게 판매되고, 이에 따라 규제를 획득한 승자와 그렇지 못한 패자가 갈린다.
규제는 흔히 그에 따라 이해가 크게 갈리는 소규모 집단에 의해 포획된다. 조직이 소규모가 되는 이유는 규모가 커지면 조직의 효율화가 어렵고 획득한 규제로 얻어낼 개인당 이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농업이 주요 산업이었던 시절에는 농민의 수가 많아 조직화가 어려워 강력한 농민 운동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농민 수가 줄어 조직화가 쉬워지고, 이들이 선거에서 무시할 수 없는 표를 행사할 수 있어 농민 운동이 이전보다 훨씬 더 강력해졌다. 또 노동조합 조직률이 아주 낮은 한국의 노조 운동이 강력한 이유는 조직화가 쉽고, 노조 관련 규제에 따른 그들의 이해가 크며, 정치인들이 노조를 활용하여 선거에서 표를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많은 규제가 만들어져 발효되곤 했다. 관세, 수입 할당제, 특정 산업 진입을 둘러싼 인허가 규제 등이 대표적이다. 이로부터 나온 현상이 이른바 정경유착이다. 그러나 지금은 예전과 같은 그런 현상이 생길 수 없을 만큼 기업 환경은 깨끗해졌다. 가장 큰 이유는 글로벌 경쟁 시대에 국가가 기업이나 산업을 국내적으로 보호하여 별다른 이익을 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경쟁에 따른 이점의 하나이다. 그런데도 국회 보좌관을 지낸 인사들이 대기업에 취업하여 대관 업무를 한다는 걸 보면 아직 그런 규제들이 일소되지는 않은 모양이다.
국가는 사람들이 오랜 기간을 살아오는 과정에서 형성된 사회 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기구이지만, 사회 질서를 깨뜨리는 주체가 되기도 한다. 물론 그 원천은 자원배분의 강제력이다. 즉, 정치권력이다. 그래서 유착의 중심에는 언제나 정(政)과 권(權)이 있고 정부 규제를 둘러싼 언저리에는 부정부패의 씨앗이 자라날 수 있다. 반대로 국가가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무엇인가를 해줄 힘이 없다면 정경유착, 정교유착, 권언유착, 권노유착 등은 생길 수 없다. 상호 이익이 없으면 거래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국가가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사회 질서를 깨뜨리는 개인이나 집단은 있기 마련인데, 이를 처벌하고 교화할 수 있는 강제력을 가진 누군가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기능을 하는 기구가 바로 국가다. 그러나 국가 권력이 비대해져 질서 유지 차원을 넘어서면 국가는 선의(善意)로 포장된 악의 근원이 된다.
개인의 자유란 국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강제력이 없는 민간은 항구적으로 다른 사람의 자유를 속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을 줄이고 개인들이 국가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은 ‘작은 정부’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민주 사회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이 충분히 계몽될 때 가능해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