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 우리 곁의 이야기

입력 2025-12-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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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성 서예가ㆍ한국미협 캘리그라피 분과위원장

우리들은 선행을 흔히 거창한 일로 생각한다. 큰돈을 내거나 이름을 남겨야 비로소 의미가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옛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선이 쌓여 집안을 덥히고, 그 온기가 이웃으로 번진다고 보았다. 이를 간결하게 전하는 말이 바로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사진)이다. 선을 쌓은 집에는 반드시 남는 복이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은 ‘주역(周易)’문언전에서 유래한 성어로 알려져 있다. 기적이나 요행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선택과 태도가 결국 삶의 결을 바꾼다는 소박한 통찰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이 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 역사 속에서도 이러한 정신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 조선시대에는 흉년이 들면 의창과 상평창의 곡식을 풀어 백성을 구제했다. 이는 일시적인 시혜가 아니라, 백성이 살아 있어야 나라가 유지된다는 현실적인 판단에서 비롯된 제도였다. 굶주림을 막는 일은 곧 공동체를 지키는 일이었다.

관의 역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향촌 사회에서는 형편이 나은 집안에서 곡식을 나누거나 빌려주는 일이 관행처럼 이어졌다. 기록에 크게 남지 않았지만, 어려운 이웃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기억은 오랫동안 전해졌다. 이런 집안이 훗날 위기에 처했을 때 주변의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낯설지 않다.

근대에 들어서도 이 전통은 끊기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와 전쟁 직후, 여유 있는 집이 고아나 피난민을 거두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한 끼의 밥과 잠자리 하나가 생명을 이어 주었고, 그 은혜는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에 남았다.

오늘날에도 모습만 달라졌을 뿐 같은 정신은 이어지고 있다. 이름 없이 소액을 기부하는 사람들, 외상값을 미뤄 주는 동네 상인, 김장 김치를 나누는 이웃들의 손길이 그렇다. 뉴스에 오르지 않는 이런 장면들이 우리 사회를 조용히 지탱하고 있다.

‘적선지가 필유여경’은 당장의 보답을 약속하는 말은 아니다. 다만 선을 쌓는 삶이 결국 사람 사이의 신뢰를 만들고, 그 신뢰가 어려운 순간 힘이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을 일러 준다.

큰 선행을 꿈꾸지 않아도 좋다. 오늘 누군가의 말을 조금 더 들어 주고, 지나치기 쉬운 어려움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렇게 쌓인 작은 선들이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힘이 될 것이다.

적선은 특별한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다. 우리 곁에서, 오늘도 평범한 사람들의 손을 통해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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